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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조병세(趙秉世) 열사 59 남긴 유서인 「결고(訣告) 전국 인민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병세(秉世)는 죽으면서 국 내 인민에게 경고합니다. 아아! 강한 이웃 나라가 맹 약(盟約)을 어기고 적신(賊 臣)이 나라를 팔아 5백년 종 묘사직이 위태롭기가 깃발 에 매달린 실끈 같고 2천만 생령이 앞으로 노예가 되고 말 것입니다. 차라리 나라 를 위하여 죽을지언정 차마 오늘의 이런 수욕(羞辱)이야 당하겠습니 까? 이것은 정말 지사(志士)가 피를 뿌리 고 열사(烈士)가 울음을 삼킬 때입니다. 병세는 충분(忠憤)이 격동하여 역량도 생 각지 못하고 글을 봉하여 궐문을 두드리 고 대궐문에 거적자리를 펴고서 국권을 옮겨진 후에 회복하고 생령을 막바지에 서 구원하려 하였는데 일이 마음대로 되 지 않아 대세가 다 틀리고 마니 오직 한 번 죽음으로써 위로 국가에 보답하고 아 래로 여러 사람에게 사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어도 여한(餘恨)이 있는 것은 나라 형세가 회복되지 못하고 임금의 근 심이 풀리지 않은 것입니다. 바라건대 우 리 전국 동포는 내가 죽었다고 하여 슬 퍼하지 말고 각자 분발하며 더욱 충의를 면려하여 나라를 도와서 우리 독립의 기 초를 튼튼히 하고 회계(會稽)의 수치를 씻는다면 병세는 지하에서도 춤추며 기 뻐하겠소. 각기들 힘쓰시오.” 그의 장례식에는 일본에 있던 한국유학생 들이 만사(輓詞)를 보내왔을 뿐 아니라, 서민 부터 기생들까지 참여하여 국민 모두의 애도 속에 거행되었다. 당시의 애국적 기생들은 ‘조국의 살 길이 교육이냐, 무력이냐’라는 논 제로 격렬한 토론을 벌일만큼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였다. 그의 유서는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되었 고, 이 신문은 「독(讀) 조병세 유서」라는 제목 의 논설을 실어 “일언일자(一言一字)가 사람 들로 하여금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게 한다” 고 그의 죽음을 아쉬워 하였다. 고종황제는 ‘충정(忠正)’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이남규의 『수당집(修堂集)』 제8권에 실린 의정(議政) 조병세와 참정(參政) 민영환을 추모하는  제문(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