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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2023년 12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또한 영국·독일·미국·프랑스·이태리 등 5개국 의 공사들에게 서신을 보내 국제공법에 의거 하여 합동회의를 열고 을사늑약을 부인하는 성명을 낼 것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회답도 받지 못했다. 사태가 위급하자 일본공사 하야시는 고종 을 협박하여 이들을 궁궐에서 내쫓게 하였지 만, 덕수궁 앞의 대안문(대한문) 밖에서 석고 대죄하며 상소항쟁을 계속했다. 일제 헌병대 는 선생을 체포하여 일본 헌병주재소에 구속 했으나, 워낙 노령이어서 이튿날 석방하였다. 12월 1일 선생은 석방되자마자 표훈원(表 勳院)에서 다시 상소운동을 전개코자 했다. 하 지만 일본 헌병들이 달려와 억지로 교자에 태 워 가까운 친척 조민희의 집으로 끌고 갔다. 목숨을 바쳐 국가존망의 위급함을 알림 이처럼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국난을 바 로잡을 수 없음을 통분히 여긴 선생은 교자 속에서 미리 준비한 극약을 마셔 자결함으로 써 자신의 의지를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결 국 자신의 목숨을 바쳐 고종황제를 비롯한 국민 모두의 자각과 국가존망의 위급함을 알 린 것이다. 조병세의 위독한 용태를 보자 일 본 헌병들이 당황하여 일본인 의사를 불러 치료코자 하였다. 그러나 사위 이용직(李容 稙)이 “우리 대한대신이 나라를 위하여 자결 코자 하는데 너희 무리들이 무슨 일로 간여 하려 하며, 또 돌아가는 분을 욕보이느냐”며 크게 꾸짖자 모두 도망쳐버렸다. 결국 자결하기 전에 써놓은 유언과 각국 공사에게 보내는 서한, 그리고 국민에게 당 부하는 피끓는 유서를 남기고 12월 1일 오후 6시쯤 세상을 떠나니 향년이 79세였다. 그의 순국소식을 접한 조 야의 수많은 인사들 이 국가의 장래와 더 불어 그의 죽음을 애 통해 하였다. 장례는 12월 8일 종로 네거 리에서 거행되었는 데, 일제의 방해로 조 민희의 집으로 식장 을 옮겼다. 수천 명의 군중이 모여 우국충 정의 정신을 기렸다. 그가 국민들에게 조병세의 유서 내용을 보도한 『대한매일신보』 기사 「독조원로유서(讀趙元老遺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