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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2023년 12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통역관 양성소 동문학 졸업, 어전 통역관도 지내 1863년 12월 27일 서울 정동 왜송골에서 중추도사(中樞都事)를 지낸 아버지 남궁영(南 宮泳)과 어머니 덕수 이씨 사이에서 12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함열(咸悅)이 며, 자는 치만(致萬), 호는 한서(翰西)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 홀어머니 슬하 에서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16세 되던 1878년 양혜덕(梁惠德)과 결혼하여 3남매를 두었다. 아들 남궁염은 후에 미국 뉴욕 총영 사를 지냈다. 한문공부에 이어서 선교사로부 터 영어를 배우게 되었고, 영어 실력을 알아 본 친구 아버지의 도움으로 1883년 9월 통 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부속기관으로 설립된 영어학교 동문학(同文學)에 입학하였다. 영어 핵심공적 1895년 10월 명성황후가  참살당하자 관직을 사임하 고 서재필과 함께 『독립신 문』을 발행했다. 『황성신 문』 사장으로 구국계몽운 동을 전개했다. 강원도 홍 천에서 모곡학교를 세워 농 촌청년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양하였다. 1923년에는  무궁화 노래시를 지어 무궁 화 사랑과 애국심을 높였 다. 1929년 경 청소년들의  자주독립정신을 드높이기  위해 조국광복기원제단을  쌓았다. ■ 건국훈장 독립장 남궁억(南宮檍) 선생 교육 · 무궁화보급운동 십자가당사건으로 고초 독립협회 · 황성신문 통해 구국계몽운동 전개 “땅이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가 아니고 땅이 작고 사람이 적어도 위대한 인물이 많은 나라 가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 1907년 4월 종로 YMCA강당에서 행한  「생존경쟁」 제목 연설문에서 - 글 편집부 주요약력 ● 1863년 12월 27일 서울 정동 출생 ● 1896년 독립협회 수석 총무 및 사법위원 ● 1898년 『황성신문』 사장 겸 주필,  ● 1905년 성주목사 부임  ● 1908년 관동학회 회장  ● 1929년 4월 『조선이야기』 저술  ● 1933년 11월 십자가당 사건으로 구금 ● 1939년 4월 5일 홍천 보리울 자택에서 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