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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우리 땅 • 한서남궁억기념관 117 강산) 등이 있다. 남궁억의 무궁화 사랑과 예찬 남궁억은 1918년에 강원도 홍 천 보리울(모곡)에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사람들을 가르쳤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당국은 지금 우리나라의 국화인 무궁화를 뽑아 없애고 대신 벚나무를 심으면서 벚꽃을 보급 선전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남궁억은 우리나라의 꽃인 무궁화를 퍼뜨려 민족정신을 일깨 우기 위해 학생들의 실습 장소에 뽕나무 묘목과 함께 무궁화 묘목 을 심어 길렀다. 그리고 뽕나무를 보급한다는 구실 아래 전국에 무 궁화를 퍼트리고 무궁화를 주제로 한 노래를 지어 가르치며 널리 불 리게 하였다. 특히 그는 1923년 다음과 같은 무궁화 예찬시를 지어 널리 알렸다. 금수강산 삼천리에 각색초목 번성하다. 춘하추동 우로상설(雨露霜雪) 성장성숙(成熟) 차례로다. 초목 중에 각기자랑 여러 말 로 지껄인다. 복사오얏 변화해도 편시춘(片 時春)이 네 아닌가. 더군다나 벗지꽃은 산과 들에 번화해도 열흘 안에 다 지고서 열매조 차 희소하다. 울밑 황국 자랑소리 서리 속 에 꽃핀다고 그러하나 열매있나 뿌리로만 싹이 난다. 특별하다 무궁화는 자랑할 말 하도 많다. 여름 가을 지나도록 무궁무진 꽃이 핀다. 그씨 번식하는 것 씨 심어서 될뿐더러 접부쳐도 살 수 있고 꺽꽂이 도 성하도다. 오늘 한국 삼천리에 이꽃 희 소 탄식말세 영원 번창 우리 꽃은 삼천리 에 무궁화라. 모곡예배당 남궁억기념관 옆에 자리하고 있 는 ‘모곡예배당’은 1919년 9월 남 궁억이 현재 자리에 예배당(교회) 을 건립하고 ‘모곡학교’를 세워 ‘무 궁화 운동’을 전개했던 곳이다. 1933년 11월 ‘무궁화 사건’으로 그 가 구속되고 일제 당국에 의해 강 제로 폐교된 옛 모습 그대로 복원 한 것이다. 또 부근의 한서초등학 교 뒤 유리봉 아래에는 남궁억의 묘소가 있다. ➋ ➌ ➊  한서남궁억기념관(홍천군청 제공)   ➋  한서남궁억기념관 옆에 복원된 모곡교회(한서교회)  ➌  무궁화 자수와 무궁화 부채 전시품 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