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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④ 105 워져 있어 마치 그날의 함성 소리 가 들리는 듯하다. 단성사 앞 6·10만세운동의 현장 탑골공원을 나와 종로3가로 가 면 영화관 단성사가 있다. 단성사 는 1907년에 설립하여 100년 넘 는 기간 동안 한국 영화를 이끈 한 국 최초의 본격적인 상설영화관 이었는데, 2015년에 폐관하였다. 단성사 앞은 1926년 6월 10일 순종(융희황제)의 인산일(因山日) 에 맞춰 거행된 6·10만세운동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6·10만세 운동은 창덕궁 돈화문에서 시작 하여 홍릉으로 이어진 장례행렬 의 흐름에 따라 벌어졌다. 오전 9 시 경부터 단성사 앞에서는 이선 호, 유면희, 임종업, 이현상이, 관 수교 앞에서는 이병립과 박하균 이, 을지로 경성사범학교 앞에서 는 박두종이, 숭인동에서는 김재 문과 황정환이 주도하는 만세운 동이 이어졌다. 원래 조선공산당 과 천도교 구파의 합작으로 추진 된 6·10만세운동은 거사 직전인 6월 7일 권오설과 박래원, 민창식 등이 체포되면서 위기에 몰렸지 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구성원 들을 주축으로 한 평동계(사직동 계)와 중앙고보와 중동학교 학생 들이 주축이 된 통동계의 활약으 로 성사될 수 있었다. 이를 기념하는 ‘6·10만세운동 선창(先唱)터’ 표지석이 ‘단성사터 역사’ 소개판 아래에 좌포도청터, 최시형 순교터, 천주교신자순교 터 표석과는 별도로 길 건너편에 설치되어 있다. 단성사 앞은 3·1운동 당시에는 3월 22일 오후 11시에 영화를 보 고 나오던 관객들이 ‘조선독립 만 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인 곳이기 도 하고, 1925년 4월에는 전조선 민중운동자대회 탄압에 항의하는 ‘적기 시위사건’이 있었던 곳이기 도 하다. 단성사 앞에서는 광복 이후인 1955년 1월 29일에도 큰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이승만의 자유당으 로부터 이른바 ‘제3세력’ 제거라 는 명분으로 조봉암, 신익희 등 40명을 암살하라는 지시를 받은 동대문파 김동진이 이 사실을 폭 로하고 잠적했다. 그런데 동대문 파 두목 이정재의 지시를 받은 이 석재가 김동진을 이곳에서 저격 하여 중상을 입힌 ‘단성사 앞 저격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탑골공원 안 기미독립선언서 기념조형물(이하 사진 필자 촬영) 탑골공원 삼일문(현판은 박정희 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