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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열일기 • 석주 이상룡의 서사록 ⑨ 91 저녁 후에 문건(文健)씨가 어른을 모시고 도착하 고, 덕연(德淵)씨 또한 함께 도착하였다. 오던 길에 작 은 아이가 홍진(紅疹)에 걸려 아직도 다 낫지 않았다 하니, 그 사이 노심초사를 묻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 겠다. 10일 비서장(賁西丈, 손 위 처남 김대락)께서 장 차 유하현으로 떠나려 하시기에, 전송하기 위해 북산 으로 가다가 도중에 김창로(金昌魯)를 만났다. 듣자 하니, 우리 집 후행(덕초 일행)이 마을에 도착해 있다 고 한다. 뛸 듯이 기뻐하며 걸음을 재촉하였다. 곡성 (谷城) 심택진(沈宅鎭)의 집에 이르러 보니, 과연 덕초 와 조만기가 이미 와 있다. 손을 잡고 회포를 푼 후 시험삼아 어느 곳에서 마 차를 탔으며 며칠이 걸렸는지 물었다. 대답하기를, “사전점(沙田店)에서 배를 내렸으며, 어제 마차를 타 고 60리를 달려서 오늘 아침에 여기 도착하였는데, 아직 아침 밥을 먹지 않았다”라고 한다. 비로소 저번 날 거구(車溝)에 배가 머물렀다는 말이 잘못 전해진 것인데, 조카 문형(文衡)과 조범용(趙範容) 등이 할일 없이 1백 50리나 떨어진 곳으로 가서 마중하느라 한 없는 고초를 겪고 있음을 알았다. 11일 박낙응(朴洛應)이 북산(北山) 일행과 작반 하여 유하현으로 떠났다. 요즈음 같이 바쁜 농사철 에 가산일 힘쓰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하기를 목표하 니, 그 의지의 확고함이 매우 가상할 따름이다. 12일 조카 좌형(佐衡)이 문형(文衡)을 불러오기 위해 거구로 떠났다. 발행하여 북산에 이르렀을 때, 듣건대 이진사(李進士) 이영규(李英圭)에게 그 곳으로 가는 인편이 있다고 하기에 드디어 거기서 멈추어 편 지를 써서 부쳤다. 13일 문형이 돌아오고 예안의 이원식(李源植) 이 대구로부터 식구들을 이끌고 도착하였다. 조재기 (趙載基)가 유하현으로부터 왔다.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고려대에서 경제학 · 정치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율곡 연구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 임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감사를 맡고 있다. 시대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풀어낼 지혜를 지나간 역사에서 찾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면암 최 익현 선생의 5대손이다. 필자 최진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