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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2023년 11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박열의 일본에서의 민족운동 순국스크랩 재일한인 독립운동사의 신조명 ⑤ 박열의 사상 형성과정 박열(朴烈)은 1902년 3월 12일 경상북도 문경군 마성면 오천리에서 박영수와 정선동 사이에서 1녀 3 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까지 4대에 걸쳐 독자 였다. 본관은 함양, 초명은 준식(準植), 일명 혁(爀)이 었다. 박열의 아버지는 1906년 별세했다. 함창보통학 교 에 입학하여 만 4년 동안을 함창보통학교에서 보냈 다. 그의 민족의식 형성에 큰 계기가 되는 일이 있었 다. 1916년 3월 졸업식을 앞둔 때였다. 조선인 담임 교사였던 이순의 선생이 학생들을 모아 놓고, 자신 이 그동안 일본의 압력에 못 이겨 거짓교육을 시켰 글  김인덕(본지 편집위원, 청암대학교 교수) 근래 박열의 사상과 행적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되고 있다. 영화도 만들어졌고 기념관도 있다. 우리는 박열을 일본 황태 자 암살계획으로 22년 2개월 동안이라는 긴 시간을 옥중에서 보낸 민족운동가로 알고 있다. 혁명가는 그 대상이 국가와 민 족이든, 한 여인이든 그 대상을 뜨겁게 보듬을 수 있는 사랑과 열정이 있는 사람이다. 박열은 그런 요소를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제 그의 일본에서의 모습을 재정리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