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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열전 • 의사요, 제주 어린이교육의 선구자 “고수선” 73 사 1호가 된 수재다. 또 어 린이 교육의 중요성을 깨 닫고 선덕어린이집을 세 워 평생을 어린이 교육에 헌신했던 분이다. “튼튼한 어린이, 따뜻한 어린이, 똘똘한 어린이”. 이는 선덕어린이집의 원 훈이다. 원훈 말고도 이곳 에는 ‘바라는 상 (교육철 학)’이 반듯하게 적혀 걸려 있었다. “선덕어린이집에 서 바라는 어린이상은 설립자이신 고수선 지사의 유 지를 받들어 앞날 우리민족의 기둥이 되도록 자라는 어린이, 곧 한민족의 기본정신인 홍익인간으로 자라 기를 바랍니다” 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부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선덕어린이집에 도 착하여 원장실로 가기 위해 재잘재잘 아이들이 수업 중인 교실 복도를 지나 다다른 곳은 작은 방이었다. 원장실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작은 책상 하나가 달 랑 놓인 곳에서 수수한 차림의 김률근 원장은 필자 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대담 중에도 아이들이 원장 실을 할아버지 방을 대하듯 드나들었다. 원장과 유 치원생이 아니라 정겨운 할아버지와 손자 · 손녀 사이 같아 보였다. 어머니의 적극적 교육열, 고수선 성장케 해 고수선 지사는 1898년 남제주군 가파리(가파도)에 서 아버지 고석조(고영조)와 어머니 오영원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오영원은 딸에 대한 교육열이 높아 고수선의 서울 유학을 도왔으며, 이후 일본 도쿄로 유학을 보내기 위해 삯바느질로 뒷바라지했던 억 척 여성이었다. 여자에 대한 교육이 엄격히 제한되던 시 절이었다. 하지만 어린 수선은 집에서 10리(4km)나 떨어진 야학에 다닐 정도로 학구열이 높았으며, 대정 공립보통학교와 신성여학교를 졸업하고 드디어 경 성 유학길에 오른다. 이 무렵 제주에서 서울로 유학 한 여자는 고수선, 강평국, 최정숙 단 세 명으로 이들 은 제주의 삼총사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다. 경성으로 올라온 고수선은 1915년부터 1918년 사이에 학교에서 일본교사 배척운동을 전개하였으 며, 1919년 3월 1일 박희도의 지시를 받아 학생을 동원, 인솔하여 탑골공원으로 가서 시위에 참가했다. 이어 유철향 집 지하실에서 신경우 등 동지 학생들 과 모여 조국에 대한 일편단심을 상징하는 붉은댕기 를 수천 개 만들어 경성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을 통해 각 학교에 배포했다. 이 때 신경우, 김숙정과 항일 벽 보를 붙이는 등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독립운동 참가와 다양한 국내외 활동 1919년 3월 중순에는 중국 상해(上海)로 건너가 고수선, 강평국, 최정숙(왼쪽부터)은 제주신성여학교 1회 동창으로 독립운동을 함께한 동지이 자 친구 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