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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독립운동가 • 서상교 · 최낙철 · 신기철 지사 65 일제의 감시와 탄압, 수탈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같은 경 향은 1941년 태평양전쟁 발 발 이후 강화되었으며, 1943 년 제4차 조선교육령의 반포 로 민족교육은 더욱 위축되 었다. 그럼에도 학생독립운동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비록 동맹휴학이 줄어들고 적지 않은 학생운동단체가 사라졌 지만,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그 때문에 모진 시 련을 겪기도 했다. 당시 학생비밀결사로는 대구상업 학교의 태극단(1942~1943), 대구사범학교의 연구 회(1941), 춘천고등보통학교의 상록회(1939~1938) 가 대표적이다. 서상교와 최낙철, 신기철은 학생비밀 결사에서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른 인물들이다. 서상교와 대구상업학교 태극단 서상교는 1923년 11월 7일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구 남산소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상업학 교 5학년 재학 중이던 1942년 5월경 김상길·이상호 와 함께 항일비밀결사 ‘태극단(太極團)’을 조직했다. 평소 일제의 식민지 차별교육에 불만을 품고 있던 이들은 인도 간디의 무저항주의와 중국 쑨원(孫文) 의 삼민주의 등의 영향도 받았다. 이들은 민족자결 원칙에 따른 조선의 자주독립과 인류의 자유평화를 쟁취하기 위해 헌신한다는 취지에 따라 활동을 시 작했다. 비밀리에 1년 정도 단원을 모은 이들은 1943년 4 월경 의결기관인 간부회의(의장 1명, 부의장 2명, 서 기관 2명) 및 일반조직, 특수조직으로 체제를 정비했 다. 일반조직은 정단원으로 구성되었으며, 임원은 단 장-부장-국장이었고, 육성부 아래 관방국·체육국·과 학국을 두었다. 서상교는 체육국장에 선임되었다. 특 수조직인 건아대(健兒隊)는 정단원과 준단원 및 초등 학교 상급생인 건아로 구성되었으며, 임원은 단장- 간부-간부보-건아장이었다. 단원은 모두 26명이었 다. 대구상업학교생이 24명, 경북중학교생과 대구직 업학교생이 각각 1명이었다. 이들은 5월 9일 비파산 약수터에서 약식으로 결단 식을 치렀다. 민족의식 고취와 학술 연구, 체력 향상 등의 활동에 나서는 한편, 전국적인 조직이 완성되 면 국내외의 여론을 환기시키고 항일투쟁을 전개하 며, 만약 어려울 경우 중국으로 망명하여 군사후원 을 받는다는 등의 계획을 수립하였다. 아울러 군사 학에도 관심을 갖고 관련 서적의 번역, 글라이더 및 태극단독립운동기념탑(대구 상원고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