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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장석천(張錫天) 선생 61 “이 불길을 전국 학생시위로 확산시키자” 학생투쟁지도본부 만들고 신간회와 협력 전남청년연맹 상임집행위원장 이던 장석천은 1929년 11월 4 · 5 일에 걸쳐 각계 사회단체 책임자 들을 불러 모은 뒤에 대책을 협의 했다. 이때 장재성은 검거된 학생 들의 석방을 위해 시위운동을 제 안했고 참석자들이 모두 이에 찬 성하여 제2차 시위계획이 추진되 었다. 또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전국적 학생시위로 확산시킬 것 을 결의했다. 또한 투쟁을 효과적으로 지도 하기 위한 ‘학생투쟁지도본부’를 만들고 각기 업무를 분담하여 계획을 차질 없이 진행시키 기로 했다. 전국적 시위운동을 주도하게 된 장석천은 광주 및 전조선의 학생 지도를 전 담키로 했다. 신간회 광주지회 상무간사를 겸임하고 있 던 그는 전문(電文)으로 신간회 본부에 광주 학생 시위운동의 소식을 전했다. 신간회는 광주·송정·장성 지회에 광주사건의 진상을 파악하여 보고하라는 지시를 하는 한편, 집 행위원장 허헌(許憲)을 책임자로 하여 조사단 을 광주로 파견했다. 장석천은 신간회 나주 지회 위원장인 김창용 등과 함께 이들을 맞 아 광주사건의 진상을 보고했다. 이때 허헌 과 대책을 협의하는 가운데 시위운동을 전국 적으로 확산시킬 계획을 알렸는데, 허헌에게 재차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장석천(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장석천에 대한 공판청구서(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