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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장석천(張錫天) 선생 59 고보를 중퇴게 되었지만, 보성고 보로 전학하게 되어 1923년 3월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관립 수 원고등농림학교(이하 수원고 농)로 진학했다. 재학 중에 학생 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1925년 11월 열린 조선학생회 정기총회에서 집행위원에 선정 되었다. 조선학생회는 우리나 라 최초의 전국 단위 학생단체 인 ‘조선학생대회’가 일제에 의 해 강제로 해체된 이후, 1923년 2월에 전문학교 학생 중심으로 창립된 학생 단체였다. 그는 수 원고농 재학시절에 사회운동과 관련한 강연회에 참가하여 두각 을 나타냈다. 도쿄 유학 갔다 광주로 돌아와 사회운동 참여, 학생조직 ‘성진 회’ 지도 1926년 6월경 ‘동맹휴학’으 로 인해 무기정학 처분을 당하 자 수원고농을 스스로 중퇴하였다. 그 뒤 일 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상과대학에 입학했 지만, 4개월이 지난 1926년 10월경 학업을 중단하고 전남 광주로 돌아왔다. 일신의 입 신양명을 위해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장석천은 광주청년회에 가입하면서 본격 적으로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당시 광주 청년회는 “대중을 교도하고 투사를 양성한 다”는 목표를 내세워 광주 시내의 중등학교 를 중심으로 하는 비밀결사의 조직과 지원 에 힘을 쏟고 있었다. 그 결과 1926년 11월 광주지역 학생비밀단체 ‘성진회’ 조직 기념사진 (1926년, 국가보훈부 제공) 장석천이 다니던 수원고등농림학교(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