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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선교사와 그 자녀들의 대일전 참여와 한국독립운동 지원 47 한국에서 철수하거나 강제 송환된  선교사들은 일제가 한국 식민지배 를 계속하는 한 한국에서 기독교 선 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실제로 체 험했기 때문에 한국이 속히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기를  바랐고, 속히 한국 선교지로 다시 복 귀하기를 염원했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경험과 능력을 총동원하여 대 일전에 참여하거나 협력하기를 원 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였다. 일제  말기 강제송환된 이들 가운데는 해 방 후 한국에 다시 내한하여 미군정 이나 선교활동에 참여한 인물들도  상당수에 달했다. 이들은 모두가 한 국 근현대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 쳤다고 할 수 있다. 한말 ·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서 선교활동을 한 개신교 선교사는 1,500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미국인이 가장 많아 70%를 차지하고, 당 시 영연방이었던 캐나다 출신, 호주 출신을 포함한 영국인이 24%였다. 이들 영미계 선교사들은 1930년대 이후 일제의 변화된 선교사에 대한 정책 때문에 한국에 계속 남아서 선교하기 어렵게 되었다. 선교사에 대 한 일제의 통제·탄압정책은 기독교계 학교에서의 신사참배 문제를 계기 로 그 강도를 더해가다가, 마침내 1937년 7월 일제의 중일전쟁 도발 이 후에는 미·일, 영·일 관계의 악화에 따라 적성국민으로까지 취급되고, 스 파이활동을 하고 있다는 혐의까지 받았다. 그러다가 1940년 가을 본국 정부의 철수 권고와 선교부의 지시에 따라 어린이와 여성들이 먼저 철 수하였다. 더욱이 1941년 12월 8일 일제가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하여 태평양전 쟁을 도발하고 나서는 그때까지도 철수하지 않고 버티던 영 · 미 개신교 선교사들은 구속되거나 억류되어 있다가, 전쟁 발발로 연합국에 억류되 어 있던 일본인들과 교환하기 위하여 1942년 6월 부산항을 통하여 모 두 강제로 본국에 송환되었다. 한국에서 철수하거나 강제 송환된 선교사들은 일제가 한국 식민지배 를 계속하는 한 한국에서 기독교 선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실제로 체 험했기 때문에 한국이 속히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기를 바 랐고, 속히 한국 선교지로 다시 복귀하기를 염원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경험과 능력을 총동원하여 대일전에 참여하거나 협력하기를 원했 고, 실제로 그렇게 하였다. 이제 이하에서 태평양전쟁기 대일전에 협력 하거나 참여한 선교사들과 그 자녀들을 일별해 보고, 한국독립운동을 지원한 선교사 몇 사람을 살펴보고자 한다. 선교사와 그 자녀들의 대일전 참여 태평양전쟁 당시 현역이나 은퇴 선교사 가운데 대일전에 협력하거 나 참여한 선교사로는 미공군 군목으로 참여한 해럴드 보켈(Harold Voelkel, 玉鎬烈), 1942년 12월 미해군에 지원하여 통역장교로 활약했 던 호레이스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元一漢), 서울 경신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