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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어재선 충장공 어재연장군 추모 및 신미양요기념사업회 이사장 21 어 이사장은 이 기념사업회가 함종 어씨 한 문중 차원이 아니라,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공법인으로 서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실제로 2018년에 공익법인으로 새롭게 설립되었다. 어떻게 보면 야심차면서도 참으로 훌륭하고 아름다 운 구상이라고 하겠다. 어 이사장은 “신미양요 당시 스러진 300여 명의 조선군 무명용사들을 역사적으 로 재조명해 나갈 것”이라며 “이는 어재연 장군님의 한을 풀어 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교육프로그램의 개설과 강좌 운영을 위해 어 재연 장군의 첫 지방수령 발령지인 경남 사천에 150 평 정도의 건물을 세우고, ‘쌍충문화원’을 개설했다고 한다. 추후 적극적 활동이 기대된다. 어재연 장군은 누구인가? 우리 국민들은 중 · 고교나 대학시절 1866년 병인 양요(丙寅洋擾)나 1871년 신미양요에 대해서는 교과 서나 역사 수업 등을 통해 대강은 알고 있다고 생각 된다. 그러나 신미양요 때 미군과 강화도 광성진에 서 싸우다 전사한 어재연 장군에 대해서는 잘 모르 는 듯 하다. 이에 이사장께 4대조이신 어재연 장군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달라고 했다. 특히 집안에 전해 오는 이야기가 있는지 들어보았다. 신미양요는 1871년(고종 8년) 미국 아시아 함대 가 ‘포함(砲艦)외교’를 통해 조선을 굴복시켜 개항을 강요하기 위해 강화도를 침공한 사건이다. 미국이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강화도를 무력 침략한 사건으로 초지진 및 덕진진과 광성보가 차례 로 함락되었고, 어재연·어재순 형제를 비롯해 350여 명(조선기록에는 57명)의 조선 관군이 전사한 전투 이다. 어재연 장군은 본관이 함종(咸從, 현재 평남 강 서) 으로 어용인(魚用仁)의 아들이다. 그는 1823년(순조 23년) 충북 음성군(음죽현 상율면[현 경기도 이천군 율면 산성리]에서 출생, 1841년(헌종 7) 무과에 급 기념사업회에서 2021 · 2022년에 발간한 학술저서 어재연 장군 초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