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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어재선 충장공 어재연장군 추모 및 신미양요기념사업회 이사장 19 호국영령들의 충정을 챙겨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 으로 증손되는 아버님(魚允源)이 뜻을 세우시고, 가 칭 ‘신미양요 기념사업회’란 이름 아래 가업으로나마 추모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벌써 오십년이 흘러 오늘 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충장공 어재연장군 추모 및 신미양요 기념사업회’ 의 출범 먼저 간단하게 ‘충장공 어재연장군 추모 및 신미양 요 기념사업회’에 대해 소개해주시기를 부탁드렸다. 어 이사장은 익숙한 말투로 기념사업회에 대해 설 명했다. “호국문화재단인 재단법인 ‘충장공 어재연 장군 추모 및 신미양요 기념사업회’의 초대 이사장이며 어 재연 장군 할아버지의 4대 봉사손(奉祀孫, 제사를 받 드는 후손) 되는 어재선입니다. 충장공(忠壯公) 어재 연 장군과 신미양요 순국 호국영령에 대한 추모사업 은 조선시대에는 관에서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일제 식민통치 하에서는 공적 행사 없이 봉사손의 가례 (家禮)로만 이루어져 왔습니다. 해방 후 1970년대가 되어서야 일제 시절에 기울었던 가세를 회복하면서 다시 추모사업을 복구할 수 있었지요.” 어 이사장은 문중에 재정적 여력이 없어 한동안 어재연 장군과 신미양요 관련 장졸 등에 대한 추모 나 기념사업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털어 놓았다. 하지만 근래 가세가 복구되어 어씨 문중의 봉사손이 가칭 ‘신미양요 기념사업회’를 세우고, 개인비용으로 전적지 강화도에서 광성제향(廣城祭享) 복원, 신미순 의총(辛未殉義塚) 복구, 쌍충비각 건립 등 추모사업 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와 동시에, 어재연 장군의 고향인 경기도 이천, 음성지역에 사당인 충 장사 건립 및 춘추제향 봉행, 쌍충묘역 재실 건립 등 의 사적 추모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한다. 다만 광 성제향은 1978년부터 강화군에서 주관하고 있다고 한다. 어 이사장은 본격적으로 추모와 기념사업을 추진 하게된 배경에 대해서는 커다란 위기가 오히려 전화 위복의 계기가 되었다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뜻밖에도 2013년 음성군의 ‘성본산업단지 개발 사업계획’에 따라, 1871년 충북 음성군 대소면, 금왕 읍 일원에 고종(1897년 말 대한제국 선언으로 ‘광무 황제’로 불리기도 함)의 명으로 조성되었던 어재연 장군과 아우 어재순(魚在淳)의 장지 ‘쌍충묘역(雙忠墓 域)’이 폐묘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놀란 저희 후손들은 뜻을 함께한 국내외 여러 역사학자, 언론인, 관계기관 분들의 도움을 얻어 일부 묘역(전 체 145,343㎡ 중 31,103㎡)을 2014년 10월 ‘충청북 도 기념물 제162호‘로 문화재 및 문화재 보호구역으 로 지정받게 되었지요. 그 결과 묘역의 일부라도 존 속유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 해 야겠지요.” 그런데 어씨 문중에서는 당시 ‘호국영령’ 묘역의 폐역 저지 활동 과정에서 1871년 신미양요 항전의 주력이었던 ‘회령 호포수[호포군(虎砲軍)]’들에 대한 공식기록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신 미양요 전몰 호국영령에 대한 역사적 연구도 많이 소홀하고 미진한 상황임을 알게 되었다. 이에 어재 연 장군 봉사손들은 지금까지 해오던 사적 추모 행 사만으로는 충장공 할아버지를 위시한 여러 희생 호 국영령분들의 위상을 밝히는데 많이 부족함을 느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