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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2023년 11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우리문화 사랑방 대화인 것이다. 그리고 이 사물놀이는 서서 하 기보다는 대부분 앉아서 하는 “앉 은반”이다. 앉아서 악기 연주의 기량 발휘를 하고 관객들의 손뼉 을 받는 형태다. 이는 관객이 연주 자가 되고 연주자가 관객이 될 수 는 없다. 더구나 초보자인 관객이 악기를 절대 만질 수 없는, 연주자 의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형태가 사물놀이인 것이다. 사물놀이가 전혀 의미가 없다 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사물놀 이 나름대로 값어치가 있고, 우리 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데 상당한 이바지를 한 것이 사실이다. 다만, 그 형태가 전혀 다른 것을 혼동하 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민족 말살정책으로 ‘농악’이라 해 여기서 한 가지 더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이 풍물놀이를 어 떤 이들은 ‘농악(農樂)’이라고 부 른다. 심지어 문화재청의 국가 무형문화재 이름도 임실필봉농 악, 구례잔수농악, 김천금릉빗 내농악, 진주삼천포농악, 강릉 농악처럼 모두 농악으로 되어 있다. 2000년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2011년 한국문화사랑협회를 설립하여 한국문화 를 널리 알리고 있다. 또한. 2015년 한국문화를 특화한 국내 유일의 한국문화 전문 지 인터넷신문 《우리문화신문》을 창간하여 발행인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자은 책 으로는 《맛깔스런 우리문화속풀이 31가지》, 《하루하루가 잔치로세(2011년 문화 관광부 우수도서)》,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종가》, 《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 등이 있다. 필자 김영조 풍물굿의 이름 변천사를 보 면 1870년대까지 판소리 춘향 가에는 ‘두레굿’이라 쓰였는데, 일본 제국주의의 농업 수탈정 책의 하나인 농업 장려운동으 로 원각사의 협률사라는 단체 에서 ‘농악’이라 부르기 시작했 다. 농악이란 말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농민의 음악’이라 하 여 농사꾼이 하는 음악으로 여 겨질 수 있다. 원래 풍물굿이 농경사회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일제 민 족 말살정책의 하나로 일본의 탈놀이 능악(能樂)의 발음인 ‘노 가꾸’를 본떠서 농악이란 말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제국 주의는 우리의 민속신앙을 말 살하고 농업 장려의 목적으로 만 풍물굿을 허용했다. ‘농악’이 란 이름으로 신청해야만 굿판 을 열 수 있었기 때문에 굿하는 단체들이 농악이란 이름으로 공연신청을 한 데서 일반화되 었다 그러다가, 8 · 15 광복 이후 많은 학자가 국악이론을 정리 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농악’이 라 불러 정착화시키고 말았다. 따라서 우리가 일제강점기를 벗어난 지 벌써 78년이 지났음 에도 여전히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에 의한 말을 그대로 써야 하는지 묻고 싶다. 또 풍물굿을 사물놀이라고 한다면 이는 무 식한 것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음악 풍물 굿을 제대로 알고 이해할 때 우 리는 진정한 한국인이 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