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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사랑방 • 풍물굿, 사물놀이, 농악 121 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그러나 풍 물굿이라면 할 수 있다. 풍물굿은 연주자가 관객이 되기도 하고, 관 객이 즉석에서 연주자가 되기도 한다. 연주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 한마음 되어 즐기면 그뿐인 것이 우리 풍물의 멋이요 특징이다. 이 것이 바로 우리 문화의 고갱이다. 텔레비전에서 풍물굿을 사물놀이라 해 한편 우리에겐 사물놀이도 있 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는 꽹과 리, 장구, 징 소리가 들리고 리포 터가 호들갑을 떠는소리로 “사물 놀이” 어쩌고 하는 말이 들렸다. 얼른 텔레비전 앞으로 가 보니 아 뿔싸 그건 사물놀이가 아니라 “풍 물굿”이었다. 방송 관계자들이 풍 물굿과 사물놀이를 구분할 줄 모 르다니 기가 막혔다. 사실 우리 풍 물굿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 주는 이가 없기에 자꾸 헷갈릴 수밖에 없을 터다. 그러면 이 둘이 무엇이 다른지 알아보자. 먼저 풍물굿과 사물놀이의 기 본적인 연주 형태가 아주 다르다. 풍물굿은 선반이라 하여 연주자 들이 서서 아니 뛰어다니며 연주 한다. 물론 단순히 뛰어다니는 것 이 아니라 연희(演 戲 )라 하여 온 갖 진법 곧 연주를 위한 대형을 짜 며 재주도 펼친다. 장구재비들의 설장구도 있고, 상모돌리기, 무동 놀이 곧 어린아이들을 무동 태워 서 노는 놀이, 버나돌리기, 잡색놀 이들이 흥겹다. 단순한 연주 그리고 기량의 뽐 내기가 아닌 것이다. 더더구나 12 발 상모놀이는 관중들을 사로잡 는 큰 매력을 지녔다. 지난 2006 년 월드컵 직전 독일 교포 위문을 간 풍물패가 베를린의 한 극장에 서 독일인 관객을 향해 12발 긴 끈을 던졌다가 당기면서 상모놀 이를 하는 것에 매료되어 독일 관 객들이 기립박수를 치는 것을 보 았다. 그날 12발 상모놀이에 관객 들은 완전히 푹 빠진 것이다. 앉은반 사물놀이, 1979년 ‘공간사랑’ 무대에서 처음 연주 하지만, 사물놀이는 이와는 다 르다. 사물놀이의 시작은 1979년 종로구 원서동의 ‘공간사랑’에서 김덕수(장구) · 이종대(북) · 최태현 (징) · 최종실(꽹과리)이 연주한 데 서 비롯되었다. 다시 말하면 서양 문화처럼 풍물 악기를 무대 위에 올려 연주하고 그 기량을 뽐내도 록 고안했던 것이 사물놀이다. 그 야말로 꽹과리, 장구, 징, 북의 4가 지 악기 곧 사물(四物) 연주의 무 앉은반 사물놀이 공연을 하는 김덕수패 사물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