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page

우리문화 사랑방 • 풍물굿, 사물놀이, 농악 119 동으로 풍물반을 하고 있었다. 그 러던 가운데 여름 방학 기간에 풍 물전수를 하러 가기로 했는데, 갑 자기 풍물전수가 아닌 사물놀이 전수를 하러 간다고 해서 가기 싫 다고 빠진 적이 있었기에 심각한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그동안 이 학교의 풍물반은 경희대학교 풍 물패연합에서 지도해 주었다. 그 풍물패는 호남좌도의 임실필봉굿 계열이었기에 사물놀이가 아닌 순수한 풍물놀이를 지켰고, 당연 히 남원의 필봉굿 전수관으로 갈 줄 알았다가 바뀐 탓에 당혹스러 웠을 것이다. 또 아들은 풍물놀이에 관한 이 야기를 많이 들어온 터여서 확고 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 각되었다. “저는 개학한 날(8월 27일) 가 을 축제 때 사물놀이 공연을 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인터넷 다음 누리집의 우리 풍물반 카페에 글 을 올렸어요. ‘풍물반이 웬 사물 놀이?’라는 제목으로 썼는데 저도 모르게 좀 감정적으로 흘렀어요. 그랬더니 대부분 친구가 제게 욕 까지 하면서 풍물반을 나가라는 거예요.” 아들은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채 심각한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저는 사흘이나 고민했어요. 제 가 생각하기에는 분명 사물놀이 가 아니고 풍물굿인데 왜 지도 선 생님과 아이들이 그걸 깨닫지 못 하는지, 이러다가 풍물굿도 제대 로 배우지 못하면서 우정만 깨지 는 것은 아닌지, ‘왕따’당하는 것 은 아닌지 크게 걱정이 돼요. 아버 지는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요.” 나는 답했다. “많이 가슴이 아팠 겠구나. 그렇지만 우리 한번 생각 해 보자. 지금으로선 풍물굿 과 우 정 두 가지 모두를 껴안을 수는 없 지 않겠니? 그렇다면 아픔이 있더 라도 한쪽을 포기할 수밖에 없겠 다. 내 판단엔 우정은 나중에 얼마 든지 복구될 수 있지만, 진실은 한 번 깨지면 영원히 되찾을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구나. 그런데 아 버지는 단순히 조언만 할 따름이 고 결정은 스스로 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이 밖에 많은 이야 기를 나눴다. 생각보다도 아들은 큰 갈등 속에서 고통받은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나의 이 말이 끝나 자마자 오히려 아들의 얼굴이 환 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풍물굿 놀이의 하나 상모돌리기를 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