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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2023년 11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내에서 탈출하여 러시아 연해주(沿海州)로 갔다가 유럽을 거쳐 1911년 9월 미국으로 돌아왔다. 미 국을 떠난 지 4년 만에 부인과 아들을 다시 만나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 수 있게 되었다. 도산의 가족들은 1914년부터 1935년까지 로스앤젤레스 노스 피게로아 스트리트(North Figueroa Street) 106번지에 살았다. 이 집은 일 반 가정집이기도 했지만, 도산이 창설한 ‘흥사단’ 의 단소(사무실)이기도 했다. 흥사단소에서 큰딸 수산, 둘째 딸 수라, 막내아들 필영이 태어나고 자 랐다. 그런데 흥사단소를 사우스 카탈리나 스트리 트(South Catalina Street) 3421번지로 옮기면서 도산의 가족들도 이사를 갔다. 1935년부터 도산 가 족들은 웨스트 37번가 954번지의 주택에 세들어 살았다. 도산의 가족들이 살았던 이 주택은 로스앤 젤레스 시당국에서 철거해 남가주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부지로 사용하려 하였 다. 그러자 이 대학 한인 동문들이 이 집의 역사적 중요성을 학교 당국에 알렸고, 도산 가족의 집은 옛 모습대로 복원하여 현재 ‘남가주대학 한국학연구 소’로 사용되고 있다. 안창호의 장남 안필립은 1928년 3월경 로스앤젤 레스 하이랜드 애비뉴(Highland Avenue)에서 채소 점을 시작했으며, 쨍쨍 내리쬐는 워싱턴 거리의 과 일 판매대에서 과일을 판매하는 일을 하였다. 그러 다가 1929년 9월 밴 나이스 대로(Van Nuys Blvd.) 에 있는 타워 식료품 상점 안에 과일과 채소상점을 열었다. 그후 안필립은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배 우가 되었다. 그는 1936년부터 1945년까지 56편의 영화에 출연하였으며, 1946년부터 1960년까지는 41편, 1961년부터 1978년까지는 16편의 영 화에 출연하였다. 그리고 1955년부터 1978년까지는 80 편의 TV 시리즈물에 출연하였다. 사진신부의 아들, 알프레드 송 미국 캘리포니아주 첫번째 아시아계 주의원은 알프레드 송(Alfred Song, 송호연, 1919~2004)이 다. ‘알프레드 송’의 아버지는 송진구이고, 어머니는 1914년 사진신부로 온 ‘김정윤’인데 남편의 성(姓) 을 따라 ‘송정윤’이 되었다. 하와이 이민국 자료에 의하면, 송진구는 1904년 8월 11일 11세의 나이로 온 가족이 하와이로 이민을 왔다. 송진구와 김정윤 은 1914년 10월 21일 결혼식을 하였다. 1919년 첫 째 아들 ‘알프레드 송’이 태어났고, 1921년 둘째 아 들 송호성이 태어났으나 1934년에 세상을 떠났다. ‘알프레드 송’은 아시아계로서는 최초로 캘리 포니아주 의원을 역임한 유명한 정치가였다. 그 래서 2014년 10월 4일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 운(Wilshire/Western)에 ‘Alfred Song Metro 도산 안창호 가족이 살던 집(현재 USC 한국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