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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2023년 10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일으켰다. 당시 미주의 한인들은 이를 ‘미일전쟁’이라 불렀다.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하면, 한인들은 미국의 대일전 승리를 위해 싸우려고 하였다. 주미외교위원장 이승만은 한미협회(The Korean- American Council)와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주최 하는 대중집회를 열었다. 3·1절을 앞둔 1942년 2월 27일부터 3월 1일까지 3일간 백악관 근처에 있는 라 파예트(Lafayette)호텔에서 ‘한인자유대회’를 개최했 다. 이 대회에는 미주 각 지방에서 온 한인 100여명 과 워싱턴의 저명한 정객들이 참석했다. 한인자유대회의 첫번째 연사로 나선 이승만 은 미 국정부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승인해 줄 것을 촉 구하고, 일본의 침략 야욕을 규탄하기 위해 모였다 고 하였다. 이 대회에서는 ①한국의 자유와 해방을 성취할 때까지 계속하여 투쟁할 것, ②한국임시정 부를 모든 정성을 다하여 지원하고 유지해 나갈 것, ③한국임시정부가 연합국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미국무부에 요청할 것, ④한국임시정부의 승인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미국대통령과 의회에 제출할 것 등의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한인자유대회 참석했던 미국 국무부의 혼 벡(Stanley K. Hornbeck)과 랭던(William R. Langdon)은, 일본에 대한 저항이나 독립에 관한 계 획은 없었고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고 부정적 평가를 했다. 대회 가 끝난 후인 3월 24일 이승만은 헐 국무부장관에 게, “우리 정부는 미국정부가 이 조약(조미조약-필 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히기를 희망합니다. 그 렇지 않으면 그것은 한국인들에 대한 일본정부의 무자비한 침략행위를 용인하는 것으로 간주될 것입 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한국 벚나무가 심어진 아메리칸대학 1943년 4월 8일 워싱턴 시내에 있는 유수의 대 학 아메리칸대학 정원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24주년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워싱턴에서는 이승 만 주미외교위원장, 하와이에서 온 이원순과 김원 용도 참석하였다. 그리고 미국 동부의 뉴욕, 펜실베 니아 등지에서 온 한인 동포들과 부인들은 한복을 워싱턴 아메리칸대학의 한국 벚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