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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열일기 • 석주 이상룡의 서사록 ⑧ 89 「서사록」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이때 이준형이 정리해 놓았기에 가능한 것이다. 1942년에 아버지 문집 석 주유고의 정리를 마친 이준형은 9월 2일 자신의 생 일날 “일제 치하에서 하루를 더 사는 것은 하루의 치 욕을 더하게 될 뿐이다”라며 동맥을 끊어 순국하였 다. 하루를 더 살면 하루의 치욕을 더하는 것이지만 아버지 행적에 대한 기록을 마치기 전에는 자결조차 할 수 없었던 그의 모습 앞에서 필자는 흐르는 눈물 을 감추기가 어렵다. 이준형은 평생 토지에 이름 한 번 올린 일이 없었 고, 평소 돈 만지는 것을 싫어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쌀값을 한 번도 물은 적이 없었던 보수적인 선비였지 만, 하지만 돈을 쓸 곳에는 아끼지를 않았고, 아낄 때 는 철저히 아꼈던 사람으로, 아버지 석주는 사진이 한 장이라도 남아 있지만 이준형은 평생 사진 한 장 을 찍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었다.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고려대에서 경제학 · 정치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율곡 연구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 임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감사를 맡고 있다. 시대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풀어낼 지혜를 지나간 역사에서 찾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면암 최 익현 선생의 5대손이다. 필자 최진홍 1940년대 전반 안동 임청각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