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page

선열일기 • 석주 이상룡의 서사록 ⑧ 87 1일 준형이 이소운의 거처로부터 돌아와 그 의 애국사상을 매우 칭송하였다. 책 2질을 빌려 왔는 데 하나는 『경여필독(耕餘必讀)』이요, 또 하나는 『수 원시화(隨園詩話)』이다. 적요하던 차에 심심풀이로 보기에 아주 알맞다. 다만 인본(印本)이 너무 잘아 돋 보기 없이는 읽기가 어려우니, 이것이 안타깝다. 남해(南海)의 윤일(尹一)과 상주(尙州)의 김달(金達) 이 찾아오다. 2일 『수원시화』를 읽었다. 청조(淸朝)가 개국 하던 때 강음성(江陰城)이 최후에 항복하였다. 어떤 여자가 있어 병졸들에게 붙들렸는데, 그들을 속여 말 하기를, “내가 목이 몹시 마르니 요행히 마실 물을 좀 먹어도 되겠습니까?”라 하였다. 병사들이 불쌍하게 여겨 허락하였는데, 마침내 강으로 가서 물에 빠져 죽었다. 이때 주검이 성 안에 가득 쌓여 악취가 코를 못들 지경이었는데, 여자가 손가락을 깨물어 시 한 수를 썼다. 그 마지막 두 구에 이르기를, 말 건네노니 행인들이여 코 가리지 마라 寄語路人休掩鼻 산 사람이 죽은 사람 냄새보다 못하니 活人不及死人香 라고 하였다. 시어(詩語)가 좋을 뿐 아니라 매운 절 개가 더욱 후대에 전할 만하다. 3일 『수원시화』를 읽었다. 진료옹(陳了翁, 송 나라 때의 사람으로 간관으로 이름이 높았다)의 아버 지는 반양귀(潘良貴, 송나라 때 사람으로 부당한 관리 를 열 차례 탄핵한 직신이었다) 의영(義榮)의 아버지 와 교분이 매우 두터웠다. 어느 날 반이 진에게 말하 기를, “우리 두 사람은 관작과 연치가 엇비슷하나, 다 만 한 가지가 그대보다 못함이 한스럽다.”고 하였다. 진이 그게 무엇인지 묻자, 반이 대답하기를, “그대에 게는 세 아들이 있으나 나는 아들이 하나도 없는 것 이다.” 하였다. 진은 첩을 두었는데 이미 아들을 낳았었다. “여러 날 빌려 줄 수 있으니 아들을 낳거든 곧 돌려보내라.” 고 하였다. 이윽고 와서 보이는데 곧 요옹(了翁)의 어 머니였다. 오래지 않아 양귀를 낳으니 또한 송대(宋 代)의 유명한 유학자이다. 이 일은 크게 예법에 어긋 나나 당시에 아름다운 이야기로 전해졌다. 고부(高 阜)의 시에 이르기를, 첩을 주어 아이 낳은 일 옛사람에게 있었으나 贈妾生兒古人有 아이 얻고 첩 돌려보낸 일 옛사람에게 없었네 兒生還妾古人無 이상룡 일가가 이주 정착한 남만주(서간도) 유하현 삼원포(한국학 중앙연구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