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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열일기 • 석주 이상룡의 서사록 ⑧ 85 24일 왕비신이 찾아왔다. 과연 외모가 우람하고 동작이 신중하며, 수작할 때에 자못 예의를 지키려 하 였다. 소운을 일컬을 때마다 반드시 ‘문사가 뛰어난 이 선생’이라 하니 소운이 이곳에서 글로 명성이 높음을 알 수가 있었다. 한 시각이 지나도록 필담을 나누었다. 헤어질 때 ‘자주 만나자[源源相從]’는 부탁을 하였다. 25일 품을 사서 집을 수리하였다. 집은 모두 일 곱 간인데, 동쪽 네 간은 홍참판[홍승헌(洪承憲)]이 빌 린 곳이고, 서쪽 세 간은 곧 헛간이다. 썩은 서까래와 무너진 벽으로 비가 새고 바람이 들이쳐 잠시도 거처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곧바로 32원을 지급하여 짚으 로 두껍게 덮고 동서로는 온돌을 들였다. 중앙에 부 엌을 만들고 내실에는 창호를 달고 바깥에는 출입문 을 달았다. 이제 집 꼴이 대략 이루어졌다. 이레갈이 의 토지를 세내어 낙응(洛應)과 더불어 1년간 나누어 지을 계획을 세웠다. 26일 비서장(賁西丈, 손위 처남 김대락)이 다시 방문하셨다. 다만 기력이 강건하셔서 기쁠 뿐만이 아 니라, 근실하게 보살펴주시는 정성이 더욱 사람을 감 복케 한다. 인하여 베개를 나란히 하고 잤다. 27일 족조 종기(鍾基)씨가 도착하였다. 덕초(德 初=이봉희, 석주의 작은 동생. 필자 주)의 편지까지 전달하였는데, 곧 지난 18일에 안동현(安東縣)에서 쓴 것이다. 편지 가운데 이르기를, “종기 · 종표(鍾杓) 씨와 7일에 출발하여 15일에 신의주에 이르고 16일 에 압록강을 건너 20일에 장차 배를 타고 포수구(蒲 水口)로 향할 것이라” 한다. 답답하고 울적하던 끝이라 뛸 듯이 반갑다. 다만 본국 내의 단속이 점점 심해져 의주경찰서에 붙들렸 고, 도강 후의 행장을 다시 검사를 받기까지 했다고 한다. 28일 참판 정원하(鄭元夏)와 홍참판이 나란 히 방문하였다. 오후에 홍참판과 더불어 수리(水利) 에 관한 제도를 논하였다. 백성의 생활이 힘입는 바 가 수리시설 만한 것이 없다. 옛 사적에서 상고해보 자. 진(秦) 나라 때의 정국거(鄭國渠)[진대(秦代에 경 수(涇水)에 조성하였던 인공수로], 촉(蜀) 지방의 육해 (陸海)[땅에서 나는 소출의 풍부함을 육해라 한다], 한 경학사 취지서(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