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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2023년 10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시론 왕산은 맏형 허훈과 함께 학문적으로 출중한 인재 로 성장하여 김해 허씨(許氏) 가문의 중심에 우뚝 섰 으며, 후일 영남을 대표하는 명문가로 자리매김되었 다. 그리고, 왕산은 밖으로 눈을 돌려 애국지사들과 교유하면서 현실에 대한 인식을 넓혀나갔다. 이 무렵 에 만난 양제안(梁濟安)과는 뒷날 김산의진(金山義陣) 에서 함께 하는 관계로 발전하였다. 이 때, 양제안은 중군(中軍)의 직을 맡아서 상주 · 선산 · 성주 지역 유 생 (儒生)들과의 연결고리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였던 것 으로 보인다. 일본 명성황후 참살, ‘을미사변’ 만행 저질러 그런데, 1894년(고종 31년) 2월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의 탐학에 항거한 동학농민봉기가 일 을미 · 을사의병 봉기, 13도창의군 지휘 서울 진격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순국시론 왕산 허위의 삶과 항일의병항쟁 글 권용우(단국대학교 명예교수) 1908년(순종 2년) 10월 21일, 이 날 왕산(旺山) 허위(許蔿) 의병장이 순국하였다. 그는 1855년(철종 6년) 4월 2일 경상 도 선산군 구미면 임은리(林隱里), 지금의 구미시 임은동에서 허조(許祚)의 4형제 중 막내아들로 태어나 유학자로 이름이 높던 그의 맏형 허훈(許薰)으로부터 학문을 수학하였다. 그런데, 왕산은 유교의 학문보다는 실용주의에 관심을 가졌으며, 병서(兵書)를 익히는 데 힘을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