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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2023년 10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③ ‘살자회’에서의 활동 화요회계와 서울청년회계는 1920년대 중반 각 지 역의 운동가들을 이념적으로 무장시키기 위해 사상 단체를 조직했다. 서울청년회계의 정남국과 송내호 등은 1926년 ‘살자회’라는 조직을 결성했다. 살자회는 정남국의 사회로 1926년 6월 13일 배달 청년회관에서 창립되었다. 창립 당시 회원은 25명으 로 주요 구성원은 정남국, 송내호, 신준회, 최형천, 송 기호, 강정태, 신광회, 최평산, 김통안, 김남두, 주채 도, 김병규 등이었다. 강령으로 ① 우리들은 상호부 조와 정의에 희생할 정신함양을 도모함, ② 우리들은 신 사회 건설의 속성을 도모함 등을 채택했다. 살자회는 창립총회에 이어 같은 날 오후 3시 임시 총회를 열어, 구체적인 운동방법에 관해 토의했다. 살자회는 6월 15일 제1회 집행위원회를 열고, 임원 개선, 회원 전형, 사상동맹 및 중앙협의회 출석 대의 원 선정 등을 논의했다. 각 부원으로는 서무부에 최 평산, 최형천, 연구부에 송내호, 강사원, 송기호, 선전 부에 김병규, 신준회 등을 선정했다. 그러나 살자회 는 1927년 11월 배달청년회사건 때 경찰 당국에 의 해 그 간부들이 대거 검거됨으로써, 활동이 중지되 고 말았다. 정남국은 소안지역에서 지역운동을 통해 반일투 쟁을 전개하면서 전국적 차원의 전망을 가질 수 있 었다. 여기에는 송내호를 비롯한 서울청년회계와의 조직적인 결합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정남국의 재일조선인 민족운동 ① 정남국의 도일(渡日) 일제강점기 조선인은 경제, 정치적 이유에서 조선 반도를 떠나 해외로 나갔다. 멀리는 미주지역과 가 까이는 간도, 러시아 연해주, 그리고 일본으로 이주 했다. 이러한 조선인의 이주는 자주적인 부분도 있 었으나, 일제의 강요에 의해 이주하기도 했다. 일본지역 조선인 노동자 동원을 시기별로 보면, 1910년대 조정기, 1920년대 구조적 노동력 동원기, 1930년대의 적극적 노동력 동원기, 1930년대말 이 후 1940년대의 전시노무동원기로 나눌 수 있다. 1923년 9월말 현재 오사카(大阪)에 거주하고 있 는 21,984명의 조선 사람 가운데 전라남도 (제주도 포함) 사람은 11,352명이었다. 소안면 출신자들은 1925년경까지는 오사카시 미나토구(港區) 주변을 지역적 기반으로 한 이즈오(泉尾)조선노동조합에 결 집되어 있었다. 대표적인 소안 출신 이즈오조선노동 조합 인물들로는 정창남, 위경영, 최평산, 김영직, 김 홍섭, 신봉채, 이수산 등이 있었다. 1927년에 오사카에 거주한 완도 출신은 약 1,700 명 정도였다. 김진택의 회고에 따르면, 그가 속한 소 안초등학교 1937년 8회 졸업생 44명 가운데 40명 이 일본에 갔다고 한다. 특히 소안 출신의 도일자들 은 일본에 있으면서도 고향의 학교나 청년운동에 관 계를 갖고 서적 등을 기증하여 향리의 발전을 도모 하기도 했다. 정남국은 반일투쟁을 위해 도일했다. 그는 국내 활 동의 한계와 민족운동의 지형 확대를 위해 수의위친 계의 파견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②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에서의 활동 정남국은 1926년 하반기부터 일본을 왕래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 같다. 그는 1927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