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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열전 • 하와이에서 독립자금으로 임시정부를 적극 도운 “박신애” 71 노동자로 하와이 땅을 밟은 사람들의 삶 이 그렇게 넉넉하고 여유롭지는 않았지 만, 임시정부가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박신애를 비 롯한 여성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고통 을 감내하면서 독립자금을 모아 임시정 부에 보냈다. 어려움 속에서도 임시정부 에 독립자금을 보내준 하와이 여성독립 운동가들의 고마움을 백범 김구는 그의 자서전에 잊지 않고 그 이름 석 자를 남 겼다. “나의 통신(하와이 동포들에게 쓴 편 지)이 진실성이 있는 데서 점차 믿음이 생기기 시작 하였다. 그리하여 하와이의 안창호 (여기 안창호[安 昌鎬]는 도산 안창호[安昌浩]와는 다른 인물로 하와 이 국민회 계통 인물임), 가와이, 현순, 김상호, 이홍 기, 임성우, 박종수, 문인화, 조병요, 김현구, 안원규, 황인환, 김윤배, 박신애, 심영신 등 제씨가 나와 (임 시)정부에 정성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백범일지, 도진순 주해, 돌베개. 320쪽》 박신애를 비롯한 하와이 여성독립운동가들은 1919년 3월 15일 하와이 각 지방 부녀 대표 41명이 호놀룰루에서 모여 조국 독립운동을 후원할 것을 결 의했다. 이에 3월 29일 2차대회에서 대한부인구제 회를 결성하였으며(회장 황마리아) 이들은 임시정부 의 외교선전사업에 동참하여 조선이 독립국임을 국 외에 선전하였을 뿐 아니라, 3·1 만세운동 때 순국하 거나 부상당한 고국의 가족들을 돕는 구제사업을 지 속하였다. 그 한가운데 박신애도 당당히 회원으로 활동 하였 다. 박신애가 속한 하와이 대한부인구제회 회원들의 임시정부 후원사업은 일시적인 일이 아니었다. 이를 입증해주고 있는 것이 백범 김구의 편지다. 이 편지 를 통해 임시정부 후원이 1919년부터 1941년까지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박신애 지사에 게 김구 선생이 보낸 편지로 이때 그녀의 나이는 52 살이었다(아래 편지글은 1941년 당시 표기임). “박신애 누이 보시요. 그간에 편지를 하랴고 하엿 지만 먼전에 알튼 각기가 발작이 되여서 고생을 하 고 둘제로는 중경에 공습이 심하여서 방공동으로 피 란하러 다니고 또는 더위가 백여도까지 더워서 잇때 까지 집필을 못하엿소. 그간 집안식구들은 다 무고 하신지요. 성경에 이르는 말과 갓치 이 세상은 끝날 이 도달한 것 갓소. 사람의 죽엄이 산갓치 쌘다는 글 박신애 지사 가족. 앞줄 왼쪽 두번째가 박신애(1945,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 사업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