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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2023년 10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의 대우개선, 간수들에 대한 사상고취 등의 운동을 전개해 공주형무소로 이감되었다. 1942년 9월 12일 형기(刑期)가 만료되었으 나, 전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석방되지 않 았다. 1941년 ‘예방구금제도’의 적용을 받아 청주보호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가, 1944년 10월 26일 40세의 나이로 옥사하였다. 정부는 2006년에 건국훈장 독 립장을 추서하였다. 이재유 민족운동의 성격과 평가 일제하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한 혁명적 노동운동에서 신화적 존재로 평가받았던 이재유의 운 동은 크게 보아 세시기로 구분 할 수 있다. 제1기는 1932년 12 월 경성형무소에서 출옥한 이후 1934년 1월 일제 경찰에 검거되 기까지의 1년 남짓한 시기(경성 트로이카 시기), 제2기는 1934 년 4월 서대문경찰서를 탈출해 1935년 1월까지 10개월 정도 지 속된 시기(경성재건그룹 시기), 제3기는 1936년 12월 검거되기 까지 2년 정도 시기(경성준비그 룹 시기)가 그것이다. 각 시기를 통해 차이는 있었지 만, 이재유는 계급적 편향을 가 지고 있었던 대다수의 노동운동 가나 공산주의자들과는 달리 민족혁명적 관 점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민족문제에 대한 큰 관심에서 출발해 조선의 독립과 ‘조선적’ 공산주의 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운동에 헌신 했다. 1936년 12월 이재유 체포를 보도한 『京城日報』 기사 「집요흉악한 조선공산당 마침내  궤멸되다」 다시 체포된 이재유(1936.12, 국사편찬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