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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2023년 10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이재유의 40년 생애 - 일본제국주의 반대투쟁과 노동운동 이재유는 1905년 8월 28일 함경남도 삼 수군 화전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삼수의 공 립보통학교에 잠시 다니다가 1922년 서울에 와서 1924년 4월 보성고등보통학교에 편입 했다가 퇴학하였다. 사회활동 중에 박윤식(朴 允植), 강성칠(姜成七), 전소수(全素洙), 윤기순 (尹基淳), 김소성(金小成), 신용수(申龍洙) 등의 이명을 사용하였다. 1925년 4월 개성의 사립 송도고등보통학 교에 입학, 사회과학연구회를 조직해 활동하 다가 이듬해 11월에 동맹휴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1926년 12월에 도쿄(東 京)로 건너가서 사립 니혼(日本)대학 전문부 사회과에 학적을 두고 고학하다가 학비 때문 에 곧 퇴학하였다. 그 뒤 노동하면서 1927년 봄부터 도쿄대 신인회 주최의 야학노동학교 에서 배웠다. 이후 공산주의 사상에 공감하게 되면서 노 핵심공적 1926년 말 일본으로 건너 가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위원, 고려공산청년회 일 본총국 위원 등을 맡아 반 일투쟁과 사회운동에 종사 하였다. 1933년 8월 조선 공산당재건 ‘경성트로이카’ 를 조직하여 반제국주의  투쟁과 노동운동에 투신하 였다. 옥중에서도 옥중투 쟁을 전개했다. 주요약력 ● 1905년 8월 28일 함경남도 삼수군 출생 ● 1927년 11월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 후보위원 ● 1928년 4월 고려공산청년회 일본총국 선전부 책임  ● 1928년 8월 조선공산당 관련자로 서울로 압송 ● 1933년 8월 조선공산당재건 ‘경성트로이카’ 조직 ● 1938년 7월 징역 6년 선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 1941년 예방구금제 적용으로 청주보호교도소 수감 ● 1944년 10월 26일 청주보호교도소에서 희생 ■ 건국훈장 독립장 이재유(李載裕) 선생 일제 반대투쟁 전개하다 옥중에서 희생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위원, 고려공산청년회 일본총국 위원 “재유 동무와 나와의 평생 잊을 수 없는 전우의 생 활이 시작되었는데, 재유 동무의 첫인상은 논리가  명철한 것 매사에 구체적이고 자세한 것, 그러고 대 단히 사무적인 것이 특색이었다.” — 이관술, 『조국엔 언제나 감옥이 있었다』, 1946. 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