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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김좌진과 청산리독립전쟁 49 리를 획득한 백운평전투였다. 북로군정서 독립군은 일본군이 청산리에 도착하자 부대를 2개 전투제대로 나누어 제1대대는 총사령 김좌진이 직접 지휘하고, 제2대대는 사관생도로 편성된 연성대로서 이범석(李 範奭)이 지휘하게 하였다. 북로군정서는 고개를 넘어 퇴각하고 백운평 부근 의 절벽 위에 매복하여 일본군이 매복 포위망 안으로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일본군은 전위중대를 먼저 내 보냈다가 백운평의 독립군 매복지점에서 독립군의 기습공격을 당하여 섬멸 당하였다. 일본군 야마다 연 대는 분개하여 본대가 백운평에서 공격을 재개했으 나, 잘 무장된 북로군정서 독립군은 매복한 채 정확 한 조준사격으로 맹공격을 하여 일본군을 참패시켰 다. 북로군정서 독립군은 별다른 희생을 치르지 않고 일본군에게 200~300명의 전사자를 내게 하고 일본 군을 패주시켜 큰 승리를 쟁취하였다. ② 어랑촌(漁郞村)전투 –김좌진과 홍범도 연합 북로군정서 독립군은 천수평(泉水坪)전투에서 일 본군 전초(前哨)기병중대를 섬멸한 후 숨돌릴 사이도 없이 다음 전투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왜 냐 하면 천수평에서 도망쳐 간 4명의 일본군 기병이 어 랑촌에 설치한 그들의 기병연대사령부에 사태를 보 고했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일본군 대부대의 공격이 있을 것은 틀림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북로군정서 는 앉아서 적을 기다리기보다는 기선을 잡아 먼저 유 리한 고지를 선점하여 선제공격을 가하는 것이 승리 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어랑촌 서남단 고지 를 선점하는 작전을 개시하였다. 북로군정서 독립군이 어랑촌 서남단 고지를 선점 하고 전투 태세에 들어갔을 때 일본군도 얼마 후에 역시 이 고지를 선점하려고 달려왔다. 그 결과 일본 군은 고지 밑에서 고지위에 있는 독립군을 공격하게 되었고, 독립군은 고지위에서 일본군을 내려다보면 서 응전하게 되었다. 독립군은 지형이 유리했으나, 일본군은 병력과 화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고 지 위의 북로군정서 독립군은 약 600명이었으나, 이 를 아래에서 포위하고 공격해 올라오는 일본군 병력 은 약 5천명에 가까웠다. 일본군은 병력과 화력의 우 세만 믿고 22일 오전 9시 경부터 고지를 향해 공격 청산리독립전쟁 때 독립군 사용 깃발과 무기류(출처 :『독립기념 관 전시품 도록』) 청산리대첩 기록화(독립기념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