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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북간도 · 연해주 항일무장투쟁의 설계자, 홍범도와 최병준 35 가 조직되자, 동의회 소속 의병부대 지휘관으로서 1908년 7월에 국내진공작전에 참가하여 함경북도 경원군 신아산(新阿山) 전투에 참여했다. 이후 연추에서 별다른 의병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 는 상황이 지속되자, 한계를 느낀 최병준은 홍범도 가 추풍 코르사코프카에서 의병을 모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자신의 부하 100명 중 상당수와 함께 추풍으로 가서 홍범도의 휘하로 들어갔을 것으로 추 정된다. 그리고 홍범도는 국내진공작전의 실전 경험 이 있는 강직한 성향의 의병 지도자급 인물인 최병 준을 신뢰하며 부하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10년 4~5월경 국내진공전을 펼칠 당시 에 최병준은 직접 전투에 참가하는 대신 후방에 남 아서 최병준 자신의 두 아들과 함께 당시 14살 된 홍 범도의 둘째 아들 홍용환을 맡기로 했으며, 홍범도 는 다른 부대원들만을 데리고 진공작전을 이끌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병준은 홍용환이 홍범도의 아들 이라는 사실을 숨기고자 자기의 아들이라고 하고 이 름도 러시아식으로 ‘최이완’(러시아 이름 이반[Ivan] 의 한국어식 표현)이라고 바꾸고 자신의 두 아들 최 형식(崔衡植), 최찬식(崔燦植, 혹은 崔昌植)과 함께 지 방의 조선학교에서 공부하게 했다. 최병준은 이 시 기쯤 아마도 북간도 혼춘(琿春) 신풍촌(新豊村)으로 거주지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혼춘은 최병준의 고 향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국경 건너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지역인데다가, 최병준이 1908년 여름 국내진 공작전 당시 의병 기지로 삼아 출전 전후로 의병을 대대적으로 모집했던 곳인 만큼 지리적으로나 인적 으로나 최병준에게 매우 익숙한 공간이었다. 한편 홍범도는 블라디보스토크로 귀환한 후 얼마 13도의군 도총재 유인석. 유인석은 홍범도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독립운동 방략을 논했다.  1912년 하바로프스크에서 일하며 군자금을 축적할 당시 의 홍범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