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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반병률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23 원장 등을 역임했다. 김교수는 조선어학회 사건 관련 독립유공자로 인 정되어 건국훈장(1977년 대통령표창, 1990년 애족 장)을 받았으며, 1993년 10월 9일 한글날에 은관문 화훈장을 추서받았다. 탄신 100돌을 기념하여 2007 년에 『무돌 김선기 선생 글모이』(5권) 전집이 출판되 었다. 김교수의 본관은 광산(光山, 현재 광주시)이다, 그 에 따르면 ‘무등(無等)’은 원래 ‘무돌’인데 한문글자에 사로잡혀 ‘무등’이라고 읽고 있다고 한다. 광주의 옛 이름 또한 무진(武珍)으로 쓰고 ‘무돌’이라고 읽었다 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아호를 ‘무돌’로 했다. 김보 희 교수는 ‘무돌’을 ‘무지개를 뿜는 돌’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알려 주었다. 반교수는 장인의 한국학을 계 승하고, 우리의 한국학을 국제적으로 확산시켜 좀더 발전시켜보자는 취지에서 대학 퇴임 무렵 이 연구소 를 세웠다고 한다. 김보희 여사(전 연세대 국제학부 겸임교수) 역시 한양대 음대에서 『소비에트 시대 고려인 소인예술 단의 음악활동』으로 2006년 2월 음악학박사 학 위를 받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한 전문가이다. 음악인류학 자로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는 부친의 유지를 계승 하여 『바람결 소리』(민속원, 2009)라는 (김보희) 향 가 작곡집을 출판했고, 『소비에트 고려민족의 노래 (한민족 노래 연구1)』(한울, 2008)라는 전문서적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반교수 내외 모두 중앙아시아 지역 고려인들의 역사와 음악에 관심을 가진 사실을 알 수 있다. ‘무돌국제한국학연구소’의 소장과 상임연구 원으로, 내외가 앞으로 이 연구소를 이름에 걸맞는 한국학연구소로 발전시키겠다고 한다. 반교수 내외 는 아직 갈길이 멀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부디 반교 수와 김보희 박사의 바람대로 우리 역사문화, 한국 근현대사는 물론, 중앙아시아 고려인 사회와 국제한 국학을 아우르는 연구사업과 교육, 대중사업을 통해 충분히 그 뜻을 펴고, 계속 발전해 나가기를 기원하 면서 연구소를 나왔다. 연구소 현판 앞에 선 반병률 · 김보희 교수 김교수가 자필 번역한 송익필(宋翼弼, 1534~1599)의 한 시  ‘족부족(足不足)’ 목각판 앞에서 기념촬영한 반교수 내외 무돌 김선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