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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 컬럼 • ‘을미사변’ 128주년에 다시 생각한다 15 어 두서너 번 칼질을 한 뒤 나체로 하여 국부검사(局 部檢査)를 행한 뒤 마지막으로 기름을 붓고 불을 질 러서…”운운 한 것을 보면 저들의 만행이 어떠 했는 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소설가 김성한은 이렇게 쓰고 있다. “… 낭인 한 사람이 나섰다. …계집은 벗겨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야. 그는 달려들어 치마저고리를 잡아채고 속옷까지 벗겨버렸다. …왕비의 죽음을 확인한 그들 은 말없는 시체에 갖은 오욕을 다 가했다. 본국에 보 낸 보고서에서 ‘저들과 같은 동포라는 것이 부끄러 울 따름이라고 하였으니’ 가히 짐작이 갈 것이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소설가 김진명은 한 텔레비전 인터 뷰에서 “국부검사가 무엇을 뜻하는가를 새겨들어 보 라”고 호소하듯 말한다. 일본 만행 보고서 발간 절실 여기서 우리가 더욱 놀랄 일은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러 놓고도 당시의 일본정부는 이 사건의 주범인 주한 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와 그 하수인들 모두 를 증거 불충분이거나 무죄로 석방하고 말았다는 사 실이다. 당시의 일본정부나 지금의 일본 정부도 일언 반구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다만 철저하게 일본정부 의 소행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내의 정변이라는 사실 을 증명하기 위해 위장전술만 썼을 뿐이다(이민원) 그러나 진실은 이 사건이야 말로 일본정부가 오랫 동안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한 거대한 음모였다는 점이다. 미우라 고로가 이토(伊藤博文)에게 보고한 내 용을 보나(이종각), 그의 후임으로 부임한 일본영사 우치다 사다쓰지(內田定槌)가 이 사건과 관련하여 작 성한 보고서를 일본 외무성 차관과 대신이 열람한 뒤 왕궁 궁내성 시종이 받아 메이지(明治)천황에게도 보 고가 되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일본은 그 진실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기네들이 하지 않은 일이라면 굳이 이미 보고된 내용을 후임공사가 나서서 반복해 서 천황에게 까지 보고해야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제는 누구도 숨기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런데도 일 본은 아직도 시치미다. 우리가 큰 치욕이라고 느끼는 이 사건에 대해 일본은 어떤 죄의식도 수치심도 느끼 지 않고 있는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를 묻고 싶다 는 얘기다. 과거사에 대한 한 · 일간의 명확한 인식과 이에 대 한 가해자 측의 진심어린 사과 없이는 진정한 화해 란 존재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 느 누구도 나치전범을 끝까지 추적 고발하는 “나치사 냥꾼”과 같이 일본전범을 쫓아 고발하는 “사냥꾼”도 있어 본 적이 없고 『우리주위의 살인자들』이라는 보 고서와 같이 “일본의 만행에 대한 보고서”도 발간 한 적이 없다. 이제부터라도 이런 보고서를 작성하여 세 계역사에 남겨 놓아야 하지 않을까싶은 생각도 간절 하다. 경북 봉화 출생.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대구대학교에 서 명예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상계』 편집장, 4선 국회의원, 초대 환경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정치와 반정치』, 『눈총도 총이다』, 『노래로 듣 는 한국근대사』 등 다수가 있다.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국제 PEN클럽 고문, 한 국시조협회 고문 등과 함께 월간 『헌정』 편집인, 월간 『순국』 편집 고문, 한국문 예학술저작권협회 회장 등을 맡으며 칼럼과 수필을 쓰고 있다. 필자 김중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