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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2023년 10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이야기가 있는 우리 땅 일본 관료나 정부측 주장의 허구 성을 폭로, 비판한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 樹)는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78년 9월에 일본정부 주장의 오류를 비판하고 한국측 주장에 상당한 근거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또 교 토대학 호리 가츠오 교수는 1987 년에 “카와카미 겐조(川上健三) 외 무성 조사관의『竹島の歷史地理學 的硏究(죽도의 역사지리학적 연 구)』(1966)를 비판적으로 검토하 고, 학자적 양심에 따라 이 책이 별다른 근거가 없는 허구”라고 반 박하는「1905년 일본의 다케시마 영토편입」이라는 논문을『조선사 연구회 논문집』에 게재하여 주목 을 끌었다. 그는 이 논문의 결론 부분에서 “조선 정부는 15세기부터 독도 에 대한 영유의식을 갖고 있었다” 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일본 태정 관(太政官)이 1877년 ‘다케시마는 일본 판도(版圖) 외(外)’라고 단정 했는데, 그 후 일본정부가 러일전 쟁 때 군사적 목적으로 울릉도에 침입하고 독도에 망루를 설치하 면서 일본 영토로 편입을 도모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지적했다. 당 시 한국인들은 일본의 독도 영토 편입을 한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권침해, 침략으로 인식하 고, 이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움 직임을 보였다. 이 시기 일본의 어업침투와 수 탈에 관해서는 후지나가 다케시 (藤永壯)의 연구 등 일본인 연구자 가운데서도 일본인 어업자본가의 한국 어민 수탈상을 적나라 하게 지적한 논문도 나왔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고유영토 독도는 지리적으로 울릉도에 가까이 있어(울릉도에서 87.4km) 육안으로 바라 볼 수 있다. 「세종 실록지리지」(1454년)는 ‘울릉도 와 독도,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 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로부터 울릉도 주민들은 독도를 울릉도 의 부속섬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조선시대 관찬문서인 『만기요람』 (1808년)에는 ‘독도가 울릉도와 함께 우산국의 영토였다’는 내용 이 기록되어 있다. 1900년 10월 대한제국은 칙 령 제41호를 공표하여, 울릉군수 ➊ ➋ ➊  안용복 기념관에 전시된 일본 태정관의 지령(1877년, 사본)  ➋  “죽도 외 일건은 본방과 관계없다”고 명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