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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② 107 다. 박진홍은 ‘신출귀몰’ 이재유와 부부 사이이기도 했다. 일제강점 기 신간회 총무간사 등을 역임한 비타협적 민족주의의 대표주자 안재홍(1891-1965)도 1930년대 평동(75-15)에서 살았다. 하지만 안창남 생가터와 안재 홍 집터, 박진홍 집터는 현장에 표 석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차라리 38선을 베고 죽고자 했던 백범 김구와 경교장 경교장(京橋莊)은 해방 이후 인 1945년 11월부터 백범 김구 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의 거처 와 집무실, 회의장소로 사용되었 던 곳이다. 1949년 6월 26일 김구 (1876-1949)가 안두희의 총에 맞 아 쓰러진 곳도 이곳 경교장 2층 이었다. 경교장은 원래 ‘광산왕’ 최 창학이 1938년에 화려하게 지은 죽첨장(竹添莊)이었는데, 임시정 부 요인이 귀국하자 백범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의 거처로 제공되 었다. 1949년 4월 19일 백범 김구가 북행을 반대하는 군중에게 나와 연설한 2층 발코니는 지금도 백 범 김구가 포효하며 분단극복을 호소할 듯하다. 경교장은 백범 김구 서거 후 최 창학에게 반환되었고, 중국(타이 완)대사관저를 거쳐 6 · 25 한국 전쟁 때는 미군 특수부대가 주둔 했다고 한다. 이후 강북삼섬병원 본관으로 사용되던 중 서울시가 2013년부터 전시관으로 꾸며 개 방하고 있다. 백범 김구의 피격 당 시 입고 있던 피묻은 옷도 전시되 어 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에 서려 있는 독립운동의 역사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도 여러 독립운동의 역사를 찾을 수 있다. 우선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 랑한 사람 스코필드(1889-1970, 석호필)를 기리는 스코필드기념 관이 있다. 캐나다 출신으로 세브 란스의전 교수이자 선교사였던 스코필드는 1919년 3 · 1운동 당 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명인 이갑 성의 부탁을 받고 우리의 3 · 1운 동을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제암 리 학살사건의 현장을 몰래 방문 하여 사진으로 남긴 이도 스코필 드였다. 1920년 4월 선교사 임기 가 만료되면서 캐나다로 떠났던 스코필드가 다시 한국에 돌아온 ➐ ➑ ➐  해방 정국의 경교장(1948년)   ➑  스코필드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