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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9월 8일 독립운동의 역사를 비롯한 한국근현대사에 관 심이 많은 서울지역 학부모와 함 께 서대문역에서 4·19혁명기념회 관과 경교장을 거쳐 한양도성 성 곽을 따라 홍난파 가옥과 딜쿠샤 에 이르는 코스를 잡아 근현대 역 사 현장 탐방을 진행했다. 이에 주 요 현장을 간략히 스케치하고자 한다. 홍난파 이전에도 신채호 선생의 조카 신수옥(남편 홍어길), 철학박 사이자 독립유공자 한치진(1901- 1955)이 살았다. 이러한 사정까지 고려한다면 서울시가 이 집을 ‘홍 난파 가옥’이라 이름 붙이고 홍난 파의 삶만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스 러운 일이다.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② 서대문 밖 근현대 역사 현장 구 서대문 주변, 잘 모르는 곳 많아 서대문경찰서 터, 4 · 19혁명기념회관, 안재홍 · 박진홍 집터, 경교장, 딜쿠샤 등 주요 현장에 잘못된 설명문도 104 2023년 10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① 글 김학규(동작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서대문경찰서와 1934년의 이재 유 탈출 사건 서대문경찰서는 1938년 9월 16일까지는 지금의 자리가 아니 라, 대각선 맞은편인 서대문역 4 번 출구 앞에 있었다. 이 시기 혹 독한 고문으로 악명이 높았던 서 대문경찰서는 경성트로이카(경성 재건그룹)의 지도자 이재유(李載 裕, 1905-1944)가 두 차례나 탈 출한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전설적인 사회주의계 독립운동 가 이재유가 서대문경찰서에 체 포된 것은 1934년 1월 22일이었 다. 그의 1차 탈출은 1월 28일 밤 12시경이었다. 경찰이 한눈을 파 는 사이 2층에서 뛰어내린 이재 유는 정동의 소련공사관 담장을 넘자마자 기절하는 바람에 일경 에 다시 체포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4월 14일 새벽 수 갑과 족쇄를 풀고 서대문서를 나 선 그의 2차 탈출은 동숭동에 있 던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교수 미야케 시카노스케(三宅鹿之助) 관사에 숨어들면서 마침내 성공 했다. 이후에도 그는 일제의 체 포망을 거듭 벗어나면서 이관술 (1902-1950) 등과 함께 경성재건 그룹을 조직하여 활동을 지속했 으니, 일제조차 ‘신출괴몰 「칠종칠 금」’이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 었으리라. 이재유가 다시 일경에 체포된 것은 1936년 12월 25일 노해면 창동리(현 노원구 창동)였다. 이 재유는 1942년 형기를 마쳤음에 도 ‘사상범예방구금령’에 따라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