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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2023년 9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쉬카고 나의 둘째 고향! 거기에는 나의 동모가 있고, 조국을 위하야 싸호는 내 동무들의 숨길이 있는 곳 이 시는 한흑구가 시카고에서 사회과학연구회라 는 진보적인 단체에서 활동하던 동지들을 회고하면 서 쓴 것이다. 한흑구는 평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평양이 첫 번째 고향이고, 시카고는 그의 사상과 문 학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두 번째 고향이 되었던 것이 다. 시카고는 이 세상의 온갖 불의가 판치는 곳이지 만, 한흑구에게 시카고는 마음과 사상의 고향이었다. 시카고에서 카페테리아를 경영한 ‘김경’ 시카고는 미국 중서부의 한국 독립운동의 중심지 였고, 이곳에서 사업적으로 성공한 한인들도 많았다. 그래서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 낼 수 있는 여유가 있 었다. 대규모의 카페테리아(Cafeteria)를 경영하여 거부된 ‘김경’이 있다. 『백범일지』에 “시카고의 김경 같은 이는 집세를 주지 못해 정부 문을 닫게 되었다 는 보도를 보고, 즉시 공동회를 소집하여 미화 200 여 달러를 모금하여 보내준 일도 있었다. 김경 씨는 나와 한번도 만난 적 없지만 애국심 하나로 이와 같 이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김경은 1920년 시카고 다운타운에 ‘워싱턴 카페테 리아(Washington Cafeteria)’를 차려 크게 성공하였 다. 그 후 이를 이어서 강영소 형제들의 ‘강씨형제 카 페테리아’, 김일선·이완수의 ‘미드 웨스트 카페테리 아’, 김지수의 ‘하워드 카페테리아’ 등이 설립되었다. 김경은 카페테리아를 경영하여 사업적으로 가 장 성공한 사업가이며, 그가 일군 부를 조국의 독립 을 위해 받쳤다. 김경의 영어 이름은 ‘King Bernard Kim’이다. 그래서 『신한민보』 1927년 11월 4일자 「 시카고 한인사회 」 라는 기사에, “시카고 한인 사업가 의 킹(king)이라 할 만”하다고 일컫고 있다. 시카고에 서 김경 만큼 사업적으로 성공한 한인는 없다. 김경 은 1915년부터 식당업에 종사하여, 시카고 시청 근 처인 워싱턴 스트리트(Washinton Street)에 대형 카 페테리아를 경영하였다. 김경의 카페테리아는 음식 이 맛있고 값이 싸다고 소문이 퍼져, 점심 때에는 사 람들이 줄을 지어 들어왔다. 매일 1,000명 이상의 손 님들이 다녀갔고, 매년 14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 렸다. 김경의 식당에는 시카고 주변의 한인 유학생 들이 학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기도 하였다. 이와같이 시카고에는 김경 이외에도 식당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1927년 당시 시카고 에 사업기관이 11개 기관이 있었는데, 카페테리아가 5개, 레스토랑이 1개, 찹수이 도매 회사가 1개, 채소 도매 회사가 1개, 양복 도매 회사가 1개, 비누 제조 회사가 1개, 식품 상점이 1개 있었다. 시카고에 있는 한인들은 주로 카페테리아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이 많았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였다. 강영소 형제들의 카페테리아 김경과 더불어 시카고에서 카페테리아 사업으로 성공하고 또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인물이 ‘강영소’ 이다. 강영소는 1916년과 1920년 두 번에 걸쳐 대 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장을 역임한 역량있는 독 립운동가였다. 시카고에서 식당업으로 성공을 한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