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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 미국 중서부 한국 독립운동의 중심 도시, 시카고 93 학생 집단이다. 1910년 이전 시카고에는 ‘김진사’라 고 불리는 ‘김승제’라는 사람이 차이나타운에서 살고 있었고, 한인은 4~5인에 불과하였다. 그후 시카고 를 중심으로 미국 중부지방에 살기 시작하여, 1910 년대에는 시카고 주변의 한인들까지 포함하면 최소 100명 이상이 거주하였다. 또한 시카고와 그 일대 에는 미국의 명문대학들이 많아, 한국인 유학생들이 많았다. 대한인국민회 시카고지방회의 결성 시카고지역에 결성된 대표적인 한인단체로는 대 한인국민회 시카고 지방회가 있다. 시카고에 대한인 국민회 지방회를 설립하자는 논의는 1910년 10월 경부터 있어 왔고, 그해 11월 5일 북미지방총회로부 터 시카고에 대한인국민회의 경찰소의 인준장이 발 급되었다. 그러나 1910년에 설립된 대한인국민회 시카고 지방회는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지 못해, 1913년 7월에 해산되 고 말았다. 그 후 1918 년 2월 16일 시카고에 거류하던 한인 15명이 시카고 지방회 설립 청 원서를 북미지방총회 에 제출하여, 2월 26일 정식으로 인준을 받았 다. 복설된 시카고 지방 회는 1918년 3월 1일 설립 기념식을 개최하 였고, 지방회관은 장인 명이 경영하던 한인여 관에 두었다.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시카고 지방회에 서 는 1919년 3월 10일부터 각 교회를 상대로 대대적 인 외교활동을 전개하여 상당한 동정을 얻었고, 각 지방의 유력자들을 초대하여 대회를 열어 일제의 만 행을 규탄하였다. 또한 4월 25일에는 시카고 지방회 관에서 의연회를 개최하여 의연금으로 1,186달러를 거두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 였던 시카고 지방회는 1920년 5월 임원과 회원들이 떠나고 아무런 활동이 없기 때문에 또 해산되고 말 았다. 그러다가 1923년 12월 30일 시카고의 한인들 이 다시 모여 지방회 간부와 임원을 선정하여 다시 복설되었다. 그리고 지방회관은 여러 차례 이동하였 지만, 1928년 7월경 시카고 한인감리교회가 있었던 옥데일 애비뉴(Oakdale Avenue) 826번지로 옮겼 다. 시카고 지방회에는 한인 실업가들이 대부분 참 가하였기 때문에, 재정적으로는 다른 지역보다는 풍 대한인국민회 시카고지방회(1918년 당시) 자리. 현재 병원(Mercy Hospital & Medical Center)이 세 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