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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2023년 9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①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다. 한민명전제(限民名田制=한 지역에 거주하는 백성 의 수를 한정하고 전지를 인구에 따라 균등하게 나누 어 경작하게 한 제도)는 동중서(董仲舒=전한 무제 때 의 학자로, 무제에게 상주하여 유교를 국교로 정하게 한 인물)에서 비롯하였으나, 사단(師丹=前漢 사람)이 조목에 따라 상주 건의하자, 마침내 왕의 척신과 근 신이 불편하다고 생각하여 마침내 점점 행하지 않게 되었다. 대개 전지를 제한하며 수세를 등급 별로 매겼던 것 은 비록 정전제(井田制)의 구제가 아니나, 그 실제는 정전제의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이 제도가 만약 행 해졌다면 국가의 부와 민력의 균등을 이루었을 것이 니, 사방에서 칭송의 소리가 자자했을 것이다. 근세에 반계 류씨(류형원)는 수록(隨錄= 반계수록) 에서 이러한 뜻을 언급하면서 대전(大典=경국대전) 의 직관십팔품(職官十八品)의 제도에 의거하여 품계 를 따라 감쇄하고 경지를 참작하여 정하였다. 그러나 끝내는 품계의 수가 너무 많아 선왕의 구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옛날에는 관직에 다만 구명(九命)만을 두었는데, 수(隋) · 당(唐) 이후로 품계(品階)와 자급(資級)을 신설 하였으니, 대개 품계와 자급을 번거로이 한 것이 또 한 명분과 기강을 혼란시킨 하나의 단서였다. 만약 그것을 다시 바꾸고자 한다면 한 번에 그 폐단을 씻 어내지 않을 수 없으니, 옛 제도에 의거하여 단지 구 품(九品)만을 두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이날 저녁에 영해의 권중엽(權仲曄) · 권영구(權寧 九)가 도착하였다. 그 편에 들으니, 안동현 이북의 연 로에 ‘경내에 들어오는 한인을 각별히 잘 호송하라’는 방문을 붙여 놓았다는데, 이것이 과연 만주 관리가 붙인 게시문일까? 13일 눈이 오다. 호적을 논하였다. 국가를 운영하는 근본은 백성의 수효를 두루 아는 데 달려있다. 백성의 수효를 두루 알고 있어야 부역 이 고르게 되며, 부역이 고른 후에야 갖가지 사업이 이루어지며, 갖가지 공적이 이루어진 이후에 천하가 공평히 다스려진다. 그러므로 선왕(先王)은 민적(民 籍)을 신중히 하고 공경히 하였으니, 『주례(周禮)』의 “사구(司寇)가 백성의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임금에 게 아뢰면 왕이 절하고 그것을 받았다”는 기록을 보 면 알 수가 있다. 후세의 군주들이 모두 이 뜻을 몰랐으므로 향리에 제도가 없고 부판(負板)과 지도(地圖)에 기강이 없어, 부역에 빠지고 도망가 숨거나 간사하게 조작하는 일 이 다투어 생겨났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사가 평온 하기를 바란다면 또한 어림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민적을 절하고서 받는다’고 한 대목은 옛날과 지금 이 다르다. 그러나 이것은 민권 보호의 대의에 관계 되는 것이니 군주 노릇하는 사람이 마땅히 깊이 살펴 서 반드시 행해야 할 바이다. 경성의 관부와 사방의 수령이 백성의 호적을 올릴 때도 모두 절하고서 보내 는 것이 마땅하다. 14일 개임. 상평(常平)과 사창(社倉)을 논하다. 상평은 삼대(三代) 때의 성왕들이 끼치신 제도이 다. 곡식이 흔할 때는 쌀을 사들이고, [물건을 팔아 쌀 을 사는 것을 일러 적(糴)이라 한다] 곡식이 귀할 때는 쌀을 내다팔아 [쌀을 팔아 물건을 사는 것을 조(糶 )라 한다.] 백성들이 그에 힘입어 살아나고 관청은 그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