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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시론 • 근대교육의 첫 걸음 83 정세는 더욱 급박하게 돌아갔다. 이 무렵에 포교와 교육을 목적으로 외국의 선교사들이 몰려들면서 배 재학당(培材學堂, 1885년) · 이화학당(梨花學堂, 1886 년) 등이 설립되면서 근대교육이 시작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교육제도 일대 개혁 배재학당은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Appenzeller, H.G)가 설립하였는데, ‘배재학당’이라 는 교명은 1887년(고종 24년)에 고종(高宗)이 하사 하였으며, 이것이 현재의 배재중 · 고등학교로 발전하 였다. 이화학당은 스크랜턴(Scranton, M.F) 부인이 1886년(고종 23년) 중구 정동(貞洞)에서 1명의 학생 을 가르치면서 시작되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여성교육기관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1908년(순 종 2년)에는 초 · 중 · 고등과의 학제를 갖추게 되었으 며, 1910년(순종 4년)에는 4년제 대학과정을 설치하 였다. 이것이 현재의 이화여자대학교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1886년 9월 23일 관립교육기관인 육영 공원(育英公院)을 설립하면서 우리 조정에서도 근대 교육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이 때, 미국인 헐버트 (Hulbert, H.B) · 벙커(Bunker, D.A) · 길모어(Gilmore, G.W) 등 3명이 교사로 초빙되어 교육을 담당했으며, 학생들의 학비와 그 밖의 경비는 호조(戶曹)와 선 혜 청(宣惠廳)이 공동으로 부담했다. 그런데, 육영공원 은 근대식 교육기관이었으나, 양반 자제만을 수용하 는 신분적 제한과 영어만을 강조하는 한계를 드러내 는 문제점이 없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결국 1894년(고종 31년) 폐교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1894년 갑오개혁에 의해 교육제도의 일대 개혁이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국면 을 맞게 되었다. 이처럼 갑오개혁을 거치면서 국정 개혁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교육을 통한 인재 의 양성이었다. 이로부터 시간이 흐르면서 근대교육 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1895년(고종 32년) 2월에는 교육입국 조서(詔書)를 반포하면서 학교 설립을 서둘렀다. 그 해 4월에 한성 사범학교를 설립했으며, 그 뒤를 이어 흥화학교 · 정 신여학교 · 숭실학교 · 배화여학교 · 명신학교 · 점진학교 (漸進學校) 등의 사립학교가 설립되었다. 인재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다 근대교육의 필요성은 1905년(고종 42년) 을사늑 육영공원이 있던 서울 정동 일대의 모습(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육영공원 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