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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2023년 9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여성독립운동가 열전 머니인 안성녀 여사와 1남 2녀의 올망졸망한 아이 들을 키우느라 삯바느질 등 온갖 거친 일을 마다하 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해야 했다. 그래서일까? 시어머니는 자신의 며느리에게만은 그러한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없는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도 며느리가 사회봉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주었다. “정말 시어머님(오항선 지사)은 고생을 많이 하 셨습니다. 저희들 역시 맨손으로 고국에 돌아오신 부모님 밑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생을 하며 살 아왔지요. 그러나 가진 것이 없는 생활이었지만, 어 머님은 당신이 집안 살림을 맡아하시면서 며느리 인 저를 내보내 사회봉사에 전념하도록 후원해주 셨습니다. 수십 년 동안 적십자봉사단 등에서 제가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시어머님 덕 이었지요.” 독립운동이 국가를 위한 일이라면 적십자 활동 등의 봉사활동은 사회를 돕는 일이다. 시어머니는 독립운동에 평생을 쏟고, 며느리는 사회봉사에 평 생을 쏟은 고부간의 헌신이 유달리 돋보였다. 어디 그뿐인가! 오항선 지사의 시어머님인 안성녀 여사 는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생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아야했으니, 오항선 지 사로서는 늘 마음이 바늘방석에 앉은 듯했다. 오항선 지사의 아드님인 권혁우 지회장은 안성 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어렴풋이 하고 있었다. 광 복의 기쁨을 안고 건너온 조국 땅에서 살아갈 길이 막막하자 한번은 안성녀 할머니가 어린 손자 혁우 를 데리고 부산시장실을 찾아갔다고 한다. 독립운 동을 한 사람이 귀국하여 방 한칸도 없이 살아가서 야 되겠느냐고 시장에게 의논 겸 도움을 요청하러 간 것이다. 그러나 허름한 옷을 입은 웬 할머니가 어린 손자를 데리고 와서 시장을 면담하겠다고 하 니 비서실에서 행색만을 보고 ‘시장님은 지금 안계 오항선 지사의 시어머니인 안중근 의사 여동생 안성녀 여사 기사 (중앙일보. 2005.8.2.) 오항선 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