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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독립운동가 • 이재현 · 한형석 · 송면수 선생 69 작전을 계획할 당시 그는 정진군 황해도반장에 임명 되어 두취(杜曲)에서 임무 수행을 준비하던 중 광복 을 맞이했다. 1945년 8월 광복 후 일본군에 배속되었다가 중국 군의 포로가 된 한인 장병 등을 광복군으로 편입시 키는 역할을 담당하다가 1946년 5월 조국으로 귀환 하였다. 귀국 후 국방부 창설에 참여하여 국방부 초 대 정훈국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군 정훈’의 기초를 다졌다. 정부는 199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예술로 독립정신을 승화시킨 청년 광복군 한국광복군이 창설된 것은 1940년 9월이지만, 독 립전쟁을 실현할 군대 창설은 임시정부의 수립 이 후 계속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은 광복군 창설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독립을 갈망하는 이들에 게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가장 먼저 호응 한 것은 독립운동가의 일원인 청년들이었다. 한형석은 아버지를 따라, 이재현은 형과 함께, 송 면수는 김효숙과 부부의 연을 맺으며 독립운동의 일 가를 이루었다. 이들은 모두 1939년 한국청년전지 공작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으며 초모 공작과 선 전 활동을 벌였고, 한국광복군 창설에 참여하였다.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배속된 이들은 정훈 · 예술 활동을 통해 광복군을 선전하고 입대를 독려하였다. 한편으로 한글과 노래, 연극을 통해 민족정체성을 지키고 전파하는데 앞장섰다. 조국 독립에 대한 열 정과 예술적 감성을 결합, 승화시킨 이들의 독립운 동은 한국광복군의 근간이 된 청년 독립운동가들의 창의적 애국혼을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중국 류저우(柳州)에서 각 단체 대표들과 함께 찍은 사진(1939년 4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