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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2023년 9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폭탄은 탁자 다리에 맞아서 튕겨 나오며 터졌고, 실내 집기류와 유리창이 부서지면서, 동시에 파편이 사방으 로 튀면서 천장을 관통 하여 2층 사법실까지 날아갔다. 그 폭발로 박 재혁은 복부와 우측 무 릎 관절에 파편을 맞아 중상을 입었고, 서장은 오른쪽 다리에 경상을 입었다. 거사 이후 일본 경찰 들에게 붙잡혀 부산 부 립(府立)병원으로 옮겨 져 응급치료를 받은 뒤 경찰서로 끌려가 취 조를 받았지만, 함구하고 일체 불응했다. 한 편 최천택·오택·김영주 등 6인도 며칠 사이에 연루자로 붙잡혀가서 혹독한 고문과 함께 자 백을 강요받았으나, 끝까지 부인하였다. 단독 행위임을 극구 주장했고, 결국 동지들은 모 두 예심 종결 때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방 면되었다. 1920년 10월 16일 이른바 ‘폭발물취체규 칙’ 위반과 살인미수로 기소가 결정되어 재판 에 회부되었다. 같은 해 11월 2일 부산지방 법원에서 노다(野田) 검사정(檢事正)으로부터 사형이 구형되었다. 이 해 11월 6일 1심에서 건조물 침입 및 파괴, 폭발물 사용, 살인미수 경합죄이나 정상을 참작한다 하여 무기징역 을 받았다. 1심에 대한 검사의 항소로 1921 「박재혁은 결국 사형」(동아일보 1921년 4월 1일자)  「대구에 수감중인 박재혁은 병사」(동아일보 1921년 5월 17일자, 국사편찬위원 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