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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023년 9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찾아 성지순례의 길을 나섰다. 결국 역사에 서 교훈을 얻어 겨레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 려 한 것이다. 강화도와 평양을 거쳐 백두산 동북의 중국 화룡현(和龍縣) 청파호(淸波湖) 에 이르렀다. 선생은 이곳에서 대종교의 확 대 포교를 구상하였다. 이곳은 고대부터 우 리 민족이 살던 곳이었고, 수많은 이주 한인 들과 애국지사들이 정착해 있던 곳이었기 때 문이다. 때문에 대종교 총본사를 이곳으로 옮겨 대종교를 크게 번창시켰다. 다른 한편으로는 교인과 교조들의 자녀교 육을 위해 교육시설을 마련하고 민족교육을 실시하여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1920년 ‘청산리독립전쟁’을 주도한 서일(徐一)·김좌 진(金佐鎭)을 비롯하여 박은식(朴殷植)·김규 식(金奎植) 등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했다. 그의 이같은 활동은 일제 당국의 대종교 에 대한 탄압을 불러 일으키게 했다. 국내에 서 탄압이 더욱 심해져 마침내 선생은 화룡 현 청파호에서 귀국을 서두르게 되었다. 당 시 조선총독부는 신포교규칙에 의한 종교등 록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종교에서도 등록서류를 제출했다. 그러나 군소종교단체 는 모두 등록을 받아주면서도 대종교의 등록 서류는 신교(神敎)가 아니라는 이유로 반송 했다. 이러한 일제의 종교탄압으로 대종교는 창교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으며, 선생도 신변의 위협을 받았다. 일제 탄압에 순교를 결심, 구월산 삼성사에 서 절식 수도로 순절 선생은 순교와 수도의 길 중 한 가지를 선 택하기 위해 매일 기원했다. 결국 황해도 구 월산 삼성사 참배계획을 공지하였다. 이는 선생이 단군의 성적지(聖蹟地)를 찾아 순교하 려고 내린 결단이었다. 1916년 음력 8월 4일 참배길을 떠나 이틀 뒤 삼성사(三聖祠)에 도 착했다. 8월 한가위에 동네 교인들과 제례를 올린 선생은 “오늘부터 3일간 절식수도에 들 어갈 것이니 절대로 문을 열지 말라”고 방문 을 봉하게 하고 순교의 길을 택했다. 마침내 9월 12일(음력 8월 15일)월 구월 산 삼성사에서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하였 다. 2016년 11월 보성군 벌교읍에 홍암나철 선생기념관이 건립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오늘날 대종교에서는 나철 선생이 순교한 음력 8월 15일을 가경절(嘉慶節)로 정하고 이 를 기념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