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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나철(羅喆) 선생 49 제국의 정식대표로 강화회의 참석을 위해 주 선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하영이 반대하자 오기호와 함께 포츠머스강화회의 참석을 위 해 청원서를 외부에 제출하고 대미(對美) 외 교항쟁을 시도했으나,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 케(林權助)의 방해책동으로 무산되었다. 이에 이기 · 오기호 등과 함께 한국침략 당 사국인 일본으로 직접 건너가 4차례에 걸친 대일외교를 전개하였다. 1905년 7월 26일 제1차 대일외교항쟁(1905.7.26~1906.2)을 실행에 옮겨 동지들과 함께 일본으로 밀항하 였다. 일본에 도착한 일행들은 한국침략을 주도 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 오쿠마 시게노 부(大 隈 重臣) · 모치즈키 류타로(望月龍太郞) 등을 차례로 만나 동양평화를 위해서는 한· 중·일 삼국이 동맹해야 하며 일본은 한국에 대해 선린(善隣)의 교의(交誼)로 독립을 보장 할 것을 요구하였다. 아울러 이토 히로부미 와 일본 천황에게 격문을 보내 평화조약 준 수를 강력하게 촉구하고, 일본의 한국침략이 동양평화를 파괴하는 무익한 처사로 이를 지 양하고 양국의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충 고하였다. 조선 독립 촉구하며 도쿄 궁성 앞에서 3일 간 단식항쟁, 매국 5적 처단 추진하다 10년 유형 그는 도쿄에 체류하는 동안 이토 히로부미 (伊藤博文)와 일본 총리대신 오쿠마 시게노부 (大隈 重信) 등에게 서신을 보내 항의했다. 그 주요 내용은 조선주권을 보장하고, 동양평화 전남 보성군 벌교읍 금곡리에 있는 나철 생가(광주일보 제공) 1916년 자결 직전 나철의 모습(대종교 총본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