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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2023년 9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일제의 내정 간섭에 분개하여 관직버려 나철 선생은 1863년 12월 2일 전남 낙안 군 남상면 금곡리(현 보성군 벌교읍 금곡리) 에서 부친 나용집(羅龍集)과 모친 송씨(宋氏) 사이에서 3형제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 명은 두영(斗永)이었으나, 인영(寅永)으로 개 명했다가 대종교 창교 후 철(喆)로 바꾸었다. 호는 홍암(弘巖). 어려서부터 한학(漢學)을 배 워 29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가주서 (假注書), 권지부정자직(權知副正字職) 등을 역임했다. 1905년 징세서장(徵稅署長)으로 재직하던 중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제의 침략 야욕이 내정간섭으로 나타나자, 그 해 5월 관 직을 사임하였다. 1905년 6월 오기호 · 이기 · 홍필주(洪弼周) 등과 함께 국제여론을 파악하고 외교항쟁을 벌이기로 하였다. 당시는 가쓰라-태프트밀 약과 포츠머스조약 체결을 앞두고 있는 시점 으로 한국문제가 불리하게 전개될 것을 예상 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국제여론에 호소하여 국권을 수호하고자 하였다. 외부대신 이하영 (李夏榮)을 찾아가 이 문제를 협의하여 대한 핵심공적 과거에 합격하여 관료의 길 을 걸었으나, 일제 침략에  항의하여 사직하였다. 을사 5적 처단을 추진하다 지도 (智島)에 유배되었다가 사 면되었다. 대종교를 창시하 여 총본사를 북간도 화룡현  청파호에 두고 대종교 보급  확산을 통해 수많은 애국  지사들을 양성했다. ■ 건국훈장 독립장 나철(羅喆) 선생 단군정신 바탕 민족 결집 구국·종교운동 전개 대종교 창건 ‘홍익인간’ 이념 독립운동 앞장 “지난해에 칼을 품고 역적을 죽이려던 인영(寅永)이  아니라 이에 오늘날 정성을 열어서 원수를 돌이키는  철(喆)이 되고, 또 이 맘이 다시 옛날에 열을 맛보면 서 한 나라만 사랑하는 치우친 생각이 아니라 이에  이 날로써 어짊을 같이 하야 온 세상을 구원하는 한  길을 가졌거늘…”  - 1916년 구월산 삼성사에서 순 명할 때 남긴 유서의 일부( 『홍암신형 조천기』 수록) 글 편집부 주요약력 ● 1863년 12월 2일 전라남도 보성 출생  ● 1904년 유신회 조직, 대한협동회 참여 ● 1905년 자신회 조직 을사오적 처단의거 계획  ● 1909년 단군교 창시 ● 1910년 대종교 교조 ● 1916년 9월 12일(음력 8월 15일) 황해도 구월산 에서 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