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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관동대지진 때 도쿄에서의 조선인학살 35 는지 알 수 없습니다. 머리에는 이렇게 상처가 4군데 나 있지요. 이것은 나중에 들은 얘기입니다만,” 당시 아라카와의 둑에서 살해된 조선인은 상당수 가 있었다. 그리고 시체는 테라시마 경찰서에 수용되 었다. 이 시체는 들것에 실려 운반된 것이 아니라, 어 시장에서 큰 생선을 걸어서 질질 끌어가듯이 2명의 남자가 쇠갈고리로 이 부분(발목)을 걸어서 끌어갔다 고 한다. 1923년 9월 1일부터 시작된 조선인학살 1923년 관동대지진 때 도쿄에서의 조선인학살은 지진의 첫날인 9월 1일부터 발생했다. 이 무렵 조선 인의 생명은 일본인들의 임의 판단의 대상이었다. 군인과 경찰, 자경단의 제멋대로의 판단에 맡겨진 상태였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를 경험한 조선 인에게 체포는 곧 죽음이었다. 죽음을 피하는 일은 도망 말고 없었다. 특히 도망가다가 체포되는 때는 타살되었다. 자경단은 국가 권력이 되었다. 저승사 자의 임무를 위임받은 것처럼 행동했고 일본 정부 도 그들의 역할을 방조했다. 그들의 조선인 참살 무공담은 재해 지역을 중심으 로 퍼졌다. 9월 1일 이후 조선인학살은 진행형이었 다. 제노사이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일가족 피살 사례를 보여주는 「일본 진재시 피살자  명부」(국가기록원 제공) 국내 연구기관 지원으로 일본에서 일어 로 번역 출판된 『關東大地震と朝鮮人 虐殺』 (관동대진재와 조선인 학살) 성균관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가보훈처 연구원, 일본 와세다대 학 연구원,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일본 국제문화연구센터 외국인연구원  등을 지냈다. 이후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 과장, 성균관대 동아시 아학술원 연구교수, 한일민족문제학회 회장을 거쳐 현재 청암대학교 교수 · 재일 코리안연구소 소장, 재외한인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식민지시 대 재일조선인운동 연구』, 『일본지역 독립운동사 연구』, 『강제연행사 연구』, 『재 일본조선인연맹 전체대회 연구』, 『오사카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일상』, 『한국현 대사와 박물관』 등 다수가 있다. 필자 김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