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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2023년 9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이야기가 있는 우리 땅 산진초등학교로 이전하였다. 또 1998년 5월 12일 부산시 어린이 대공원 수변공원에 박재혁 의사 동상을 건립하여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부산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박재혁은 부산의 대표적 독립 운동가로 1895년 부산 동구 범일 동에서 태어나 부산진육영학교와 부산공립상업학교를 나와 왜관의 무역학교에 다니다가 1917년 중 국 상하이(上海)로 갔다. 이후 중국 각지와 싱가포르 등지를 다니며 무역업에 종사했다. 이때 많은 독 립운동가들과 교류하였고, 1920 년 7월 만주 지린성(吉林省)에서 창단된 무장 항일 독립단체인 의 열단(義烈團)에 입단했다. 특히 상 하이에서 단장 김원봉(金元鳳)을 만나 부산경찰서를 폭파하고 서 장을 처단할 것을 지시받았다. 같은 해 9월 13일 고서적상으 로 가장해, 고서(古書)속에 폭탄을 숨겨 일본 나가사키(長崎)를 거쳐 고향인 부산으로 잠입했다. 1920 년 9월 14일 부산경찰서장 하시 모토 슈헤이(橋本秀行)를 찾아가 폭탄을 터뜨려 부상을 입혔는데, 이때 박재혁 의사도 파편으로 중 상을 입었다. 탁자에 마주 앉아 있 다가 폭탄 투척했기에 슈헤이 서 장은 중상을 입고, 결국 그 후유증 으로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부산 전역에 비상경계령이 내려지고 『부산일보』는 호외를 발행했다. 1921년 3월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혹독한 고문과 폭탄 의 상처로 고통을 겪다가 일제에 죽기 싫다면서 단식을 시작하여 결국 27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정 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 장을 추서했다. 박재혁 의사 동상은 2003 년 6 월 13일 국가보훈처에서 현충시 설로 지정하여 부산광역시 시설 관리공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일제 침략과정에서 일본인 위해 수원지 조성 이처럼 살신성인의 의열투쟁을 감행한 박재혁 의사를 더 많은 시 민이 알 수 있게 하는 방법의 하나 로 ‘박재혁 의사 동상’을 많은 사람 들이 오가는 대로변에 설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박의사의 동상이 위치한 구 성지곡수원지는 원래 부산에 거주 하는 일본인들의 식수(食水)를 조 달할 목적으로 콘크리트댐 건설이 축조되어 1909년 완공된 곳이다. 조선 시대 초량(草梁) 왜관 시절 부터 우물에 의존하고 있던 일본 ➍ ➎ ➍  부산 어린이대공원 수변공원 원경(가운데 박의사상)   ➎  구 성지곡수원지 댐과 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