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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우리 땅 • 부산 박재혁 의사상과 그 주변 107 사를 단행하여, 의열투쟁의 선구 로서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대 한민국 남부권의 거점이자 서울 과 함께 중요한 한 축을 이루고 있 는 부산의 독립운동에 대한 인식 은 부산독립운동 관련 종합기념 관 · 박물관이 없는 사실이 보여 주 듯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듯 하다. 이에 지난 8월 10일 말복 점심 무렵, 더위가 한창일 때 부산광역 시 부산진구 어린이대공원 안의 수변(水邊)공원에 있는 ‘박재혁 의 사상’을 찾았다. 그 전날 부산 영 도에서 열린 백산 안희제 선생 순 국80주기 추모학술회의에 참가 했기에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려웠 기 때문이다. 박재혁 의사의 동상을 찾아가 는 길은 꽤 멀고 힘들었다. 부산역 에서 지하철을 타고 연산역에서 내린 뒤에 택시를 타고 부산진구 어린이대공원 입구에서 내렸다. 그리고 박의사 동상이 있는 수변 공원까지 한참동안 걸어가야 했 다. 삼복더위에 박의사의 동상까 지 가는 동안 걷다가 그늘에서 쉬 기를 여러차례 반복했다. 입구에 서 거리는 약 1.6km였지만, 무더 위가 한창이어서 거의 50분 정도 걸렸다. 다행히 편백나무와 소나 무, 활엽수 등 숲이 울창하여 많은 시민들이 나와 더위를 식히고 있 었다. 박재혁 의사비와 동상 건립, 최근 이전 설치 추진 모색 2021년 12월 부산시는 부산의 정체성과 고유성이 담긴 유 · 무형 의 유산 11건을 제3차 ‘부산 미래 유산’으로 선정했는데, 1920년 의 열단 최초로 성공적 거사를 결행 한 박재혁을 기리는 ‘박재혁 의사 유적’(어린이대공원 동상)도 포함 되었다. 지난 2019년 ‘부산광역시 미래유산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 한 조례’ 제정에 따라 선정하기 시 작해 당시까지 총 60건을 선정했 다고 한다. 물론 범일동에는 무장투쟁단체 인 의열단의 제1호 투사 박재혁 의 생가 터인 조방로에 ‘박재혁 거 리’가 있다. 부산어린이대공원 외 에 모교인 개성고(부산상고)에 박 재혁 동상이 있으며, 독립기념관 장을 지낸 김삼웅이 『의혈지사 박 재혁 평전』을 개성고 동창회 지원 으로 2019년 5월에 발간했다. 최 동훈 감독의 2015년 영화 ‘암살’ 은 박재혁 의거 활동에서 모티브 를 얻은 것이었다고 한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어린이대 공원에 있는 ‘박재혁 의사상(像)’ 은 1998년 2월 부산시에서 구 성 지곡수원지(聖知谷水源池) 안쪽에 세웠다. 박재혁 의사가 횃불을 들 고 조국 독립을 외치는 군상 위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이고, 좌대 정면 에 약력을 기록하였다. 2003년 6 월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지정되었으며, 부산시 시설관리 공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박재혁의 1920년 9월 14일 부 산경찰서 폭탄투척 의거는 의열 단 창단 이후 최초로 성공한 투탄 거사였다. 그의 의거를 출발점으 로 의열단의 무장투쟁은 전국적 으로 확산 전개되었고, 나아가 국 외 의열투쟁으로도 이어졌다. 예 를 들면 박재혁 의거에 자극받은 최수봉 지사는 석달 후 밀양경찰 서에 폭탄을 던졌고, 1921년에는 김익상 지사가 중국에서 몰래 입 국하여 서울 조선총독부 2층 회 계과에 폭탄을 던진 후 일본인 행 세를 하며 유유히 출국했다. 1946년 10월 동지 최천택과 오 택을 비롯한 유지들이 박재혁 의 사의 항일투쟁 정신을 기리고자 정공단(鄭公壇) 옆에 ‘박재혁 의사 비’를 세웠고, 1981년 5월 8일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