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page

104 2023년 9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앙정보부-안기부가 있던 이곳에 세계인권선언문을 새겨놓은 것은 대단히 뜻 깊은 일이다. 그런데 설 명판이 이상하다. “이 곳은 우리 민족의 인권을 말살하던 일제의 통감관저 터 인근 부지로 근·현대 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 입니다.”라는 문구만 새겨져 있다. 「세계인권선언문」 조형물을 설치 한 이유를 단지 일제의 통감관저 가 있던 곳이기 때문이라고만 설 명해놓으면, 이는 또 하나의 역사 왜곡이 될 수밖에 없다. 개선이 필 요해 보인다. 김익상 의사의 의거가 있던 곳, 조선총독부(한국통감부) 터 을사늑약이 체결된 직후부터 남산 왜성대에 짓기 시작한 한국 통감부 건물은 이듬해인 1906년 2월에 완공되었다. 이곳은 경술국 치 이후에는 1926년 광화문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조선총독부 건 물로 계속 사용되었다. 1921년 9월 12일 의열단의 김 익상 의사(1895~1941)가 폭탄 을 투척한 곳도 이곳이다. 전기수 리공으로 변장하여 총독부 건물 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 김익상은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가 비서과와 회계과에 각각 하나씩 폭탄을 던 졌다. 비서과에 던진 폭탄은 폭발 하지 않았지만, 회계과에 던진 폭 탄은 굉음을 내고 터져 총독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김익상 의사는 2층으로 황급히 올라오고 있는 일제 헌병들에게 “2층으로 올라가면 위험해!”라는 말을 남긴 채 유유히 총독부 건물을 빠져나 갔다. 당황한 경찰은 누가 폭탄을 던졌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 게 되자 의심스러운 사람은 무차별 체포하여 고문하는 방식으로 대 응했다. 하지만 일제 당국은 평양 을 거쳐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김 익상 의사를 어쩌지는 못했다. 남산 입구에 들어선 이회영기 념관(2021년 6월 개관)도 새로운 볼거리로 자리 잡고 있다. 이회영 (1867-1932)은 6형제 독립운동가 (건영 · 석영 · 철영 · 회영 · 시영 · 호영) 중 넷째이다. 상동교회 안에 있던 상동청년학원의 학감으로 근무하 면서 1907년 4월에는 ‘신민회’ 발 족에 참여했고, 1907년 6월에는 ‘헤이그 특사’ 파견도 주도했다. 경 술국치를 당해 집안의 전 재산(당 시 돈 60만원)을 정리하여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가의 산실 신 흥무관학교 운영에 기여한 인물 ➐ ➑ ➐  김익상 의사의 서대문형무소 수형자카드  ➑  이회영기념관 내부 전경(필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