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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2023년 9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물을 지나 서쪽으로 더 가면 ‘통 감관저 터’를 만날 수 있다. 일제 가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체결한 직후, 한국통감부를 설치 한 이래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 (伊藤博文)를 비롯한 역대 통감의 거처로 사용된 곳이다. 지금은 건 물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경술국치 100주년인 2010년 8월 29일에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 구소가 ‘통감관저 터’ 표석을 이곳 에 세워놓았다. 이곳 통감관저는 1910년 8월 22일 3대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 케(寺內正毅)와 대한제국의 총리 대신 이완용이 ‘강제병합’ 조약을 조인한 경술국치의 현장이기도 하다. 데라우치는 이날(8월 22일) 있었던 일을 일기로 남겼는데, 아 래 내용은 그 중 일부이다. 오후 4시 한국병합의 조약을 통감관저에서 조인하고 종결 했다. 열석한 자는 이완용, 조 중응, 부통감과 나였다. 또 오 는 29일에 발표하기로 결정했 다는 대의를 통지해 두었다. 합병 문제는 이렇게 조용하게 조인을 끝냈다. 가가(呵呵). 명색이 나라와 나라 사이에 이 루어진 조약인데, 그 장소가 공적 인 장소로 보기 힘든 통감관저였 다는 사실이 당시 대한제국이 처 한 비루한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일제 침략세력은 1894년 동 학농민혁명을 일으킨 농민봉기 군을 분쇄하고, 1894~95년의 제 1차 의병전쟁과 1906~9년의 제 2 · 3차 의병전쟁까지 무력으로 진 압하였다. 안중근(1879-1910) 의 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 건까 지 겪었으면서도 마침내 대한제 국을 손에 넣었으니 일제 수뇌부 와 데라우치가 얼마나 기뻐했을 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럼 에도 호쾌하게 웃는 ‘가가(呵呵)’로 끝낸 이날의 일기는 100년을 훌 쩍 넘긴 지금에도 한국인들의 분 노를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통감관저 터’ 표석 앞에 있는 특이한 모양의 조형물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일본공사를 지낸 하야 시 곤스케(林權助)의 동상 기단을 앞뒤와 위아래를 거꾸로 하여 세 워놓은 미술작품이다. 이곳에 을 사늑약을 주도한 하야시 곤스케 의 동상이 들어선 것은 1936년이 었다. 이곳에 있던 건물이 통감관 저-총독관저로 사용되기 전에는 ➌ ➍ ➌  한국통감부(조선총독부) 건물  ➍  ‘통감관저 터’ 표지석(필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