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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① 101 까지 당해야 했다. 하지만 김마리 아는 이를 이겨냈고, 5개월 만에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대한 민국 애국부인회 사건’으로 또 다 시 구속되었던 김마리아가 1921 년 병보석으로 석방된 상황에서 일제의 감시망을 뚫고 중국으로 탈출한 사건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때 고문으로 생긴 메스토이병 은 평생 김마리아를 괴롭히는 고 질병이 되었고, 끝내 광복을 보지 못한 채 1944년에 서거하는 원인 이 되고 말았다. 한편, 이곳에는 5 · 16군사정변 이후 1991년까지 30년간 수도 경비사령부(1984년부터는 수도 방위사령부)도 있었다. 1979년 12 · 12쿠데타를 일으켜 장태완 당 시 수경사 사령관을 체포한 신군 부 세력이 노태우를 새 사령관에 앉힌 곳도 여기다. 1980년 5월 소 위 ‘충정작전’을 통해 광주시민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후 정권을 장 악한 이들 신군부 세력은 수경사 소속 군인들의 종교 활동을 지원 한다는 명목으로 이곳에 절을 세 웠는데, 그 절의 이름이 하필 ‘충 정사(忠正寺)’였다. 충정사는 지금도 ‘남산골 한옥마을’ 안에 그대로 있다. ‘남산골 한옥마 을’에는 이곳이 수 도 경 비 사 령 부 가 있던 곳임을 알리 는 표석은 있지만, 조선헌병대사령부와 경무총 감부 가 있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고통을 겪었던 곳임을 알리는 표 석은 없다. 경술국치의 현장, ‘통감관저 터’ 남산1호터널 앞 다리를 건너면 중앙정보부 본부 건물로 사용되 던 남산 유스호스텔이 있다. 이 건 ➊ 1919년 3 · 1운동 직후의 남산 지도. 오른쪽부터 헌병대사령부, 경무총감부(이상 청색), 총독관저(적색), 조선총독부(녹색) 위치가  표기되어 있다. 남산은 일제가 조선을 지배하는 핵심권력기구가 밀집한 곳이었다. ➋ 김마리아와 영문 서명 ➊ ➋ ‘수도방위사령부 터’ 표지석